시골인심과 두터운 정 있어 살기좋은 석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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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작성일20-05-17 19:15본문
↑↑ 석촌리 전경
[경북신문=김영식기자] 양남면 석촌리 용바우골에 용두사라는 절이 있었다. 그 절에는 용의 형상을 한 조형물이 있었고 용의 머리는 외동 쪽을, 꼬리는 양남 쪽을 향하고 있었다.
어느 해 외동에 심각한 흉년이 들었다. 외동의 머슴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용두사 용의 조화인 것 같았다. 용의 입이 외동을 향해 곡식을 모두 먹어치우고 배설물은 양남쪽으로 쏟아져 비옥한 땅이 됐다는 것이다. 깊은 밤 외동의 머슴들은 용바우골에 잠입해 용의 머리를 잘라버렸다. 석촌리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다. 사라져 버린 용의 머리를 시멘트로 만들어 다시 붙여놓았다. 지금 용두사는 없어져 버렸지만 시멘트로 머리를 붙여 놓은 용의 형상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덕인지 양남면은 근래 그리 큰 흉년이 없었다고 한다.
↑↑ 월성원자력본부 제1발전소 기계부 직원들이 지난해 자매마을 석촌리가 태풍 피해를 입자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양남면 석촌리는 비교적 깊은 골짜기에 형성된 산골이다. 예로부터 돌이 많다고 해서 석촌, 돌촌이라 했고, 학이 많이 내려와 앉았다고 해서 석을촌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현재의 석촌리에는 과거에 돌이 많았다는 이야기와는 달리 넓은 들판과 물 좋은 시내가 잘 어우러져 그다지 거칠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이 마을에는 110가구 216명의 주민이 살고 있고 특별한 특용작물 없이 논밭일을 하는 농민이 대다수다. 그리고 최근 들어 소를 키우는 축사가 4개 들어섰다.
산 좋고 공기 맑은 마을이라는 소문이 나 외지, 주로 인근도시인 울산에서 석촌리로 이주해 와 현재 약 60여 명이 외지 유입인구다. 전원주택을 짓고 살아가는 그들은 대개 울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곳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 석촌리 명대마을의 평화로운 모습.
석촌리는 명대, 학전, 새마을, 용암, 전원마을 등 5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그 가운데 본 마을은 학전인데 임진왜란 때 수백마리의 백학이 내려와 난리를 피했다고 해서 '새밭두들'이라고도 불렀다.
석촌리 이성열 이장은 "마을 주민 대부분이 고령자여서 마치 경로당에 어른을 모시고 사는 듯한 분위기"라며 "그래도 전통적인 시골인심이 남아 있고 아래 위로 정이 두터워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말했다.
↑↑ 석촌리 이성열(가운데) 이장이 용암마을 반장댁을 찾아 마을 운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외지에서 들어온 인구에 대해서는 "외지인들은 비교적 젊은이들이어서 이 마을에 마땅한 생업이 없어 대도시에 직장을 두고 살아가고 쇼핑 등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울산에서 해결한다"며 "마을 주민들과의 교류도 조금은 뜸한 편이어서 한 마을의 공동체로서 소속감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용암골 외딴 집에서 살아가는 김문대(84) 할아버지는 5대째 이 마을에서 살았다. 그러니 석촌리의 산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부인 박분자(81) 할머니와 외딴집에서 살아가지만 한 번도 이 마을을 떠난 적이 없어 병원 나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 용두사터에 남아 있는 용의 형상. 머리 부분이 잘렸다가 시멘트로 이어붙인 흔적이 남아 있다.
김 할아버지는 "어릴적 석읍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3년 다니다가 북한군이 쳐들어와 불을 지르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두고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았다"며 "차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골짜기에 묻혀 살면서도 이웃간에 시비 없이 밥 굶지 않았으니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다고 할만하다"고 말했다.
석촌리는 월성원자력본부 제1발전소 기계부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기계부 원종일 주임은 "석촌리의 주민들이 마치 친척들처럼 위화감 없이 잘 지내고 있다"며 "앞으로 석촌리가 가장 필요한 점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살펴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기계부의 주대근 과장이 석촌리 출신이어서 다른 마을보다 인연이 더 깊다"고 덧붙였다.
↑↑ 용암마을 외딴집에서 살아가는 김문대, 박분순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
5개 자연 자연마을이 평화롭게 연결된 석촌리는 양남면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마을에 속한다. 도로와 잇댄 학전과 울산 북구와 산 하나를 두고 붙어 있는 용암까지 평지와 험준한 산골까지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학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시골에서 사는 삶이 어렵지 않느냐고 묻자 "젊은 사람들이 시골에서 살기 어렵지 늙은 사람들은 정부에서 주는 연금으로 별로 어려움 없이 산다"고 말했다. 병이 들어 의료비가 발생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경제적 어려움이 없다고 말하는 그 주민에게서 석촌리의 풍요로움과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김영식 7494929@naver.com
[경북신문=김영식기자] 양남면 석촌리 용바우골에 용두사라는 절이 있었다. 그 절에는 용의 형상을 한 조형물이 있었고 용의 머리는 외동 쪽을, 꼬리는 양남 쪽을 향하고 있었다.
어느 해 외동에 심각한 흉년이 들었다. 외동의 머슴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용두사 용의 조화인 것 같았다. 용의 입이 외동을 향해 곡식을 모두 먹어치우고 배설물은 양남쪽으로 쏟아져 비옥한 땅이 됐다는 것이다. 깊은 밤 외동의 머슴들은 용바우골에 잠입해 용의 머리를 잘라버렸다. 석촌리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다. 사라져 버린 용의 머리를 시멘트로 만들어 다시 붙여놓았다. 지금 용두사는 없어져 버렸지만 시멘트로 머리를 붙여 놓은 용의 형상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덕인지 양남면은 근래 그리 큰 흉년이 없었다고 한다.
↑↑ 월성원자력본부 제1발전소 기계부 직원들이 지난해 자매마을 석촌리가 태풍 피해를 입자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양남면 석촌리는 비교적 깊은 골짜기에 형성된 산골이다. 예로부터 돌이 많다고 해서 석촌, 돌촌이라 했고, 학이 많이 내려와 앉았다고 해서 석을촌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현재의 석촌리에는 과거에 돌이 많았다는 이야기와는 달리 넓은 들판과 물 좋은 시내가 잘 어우러져 그다지 거칠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이 마을에는 110가구 216명의 주민이 살고 있고 특별한 특용작물 없이 논밭일을 하는 농민이 대다수다. 그리고 최근 들어 소를 키우는 축사가 4개 들어섰다.
산 좋고 공기 맑은 마을이라는 소문이 나 외지, 주로 인근도시인 울산에서 석촌리로 이주해 와 현재 약 60여 명이 외지 유입인구다. 전원주택을 짓고 살아가는 그들은 대개 울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곳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 석촌리 명대마을의 평화로운 모습.
석촌리는 명대, 학전, 새마을, 용암, 전원마을 등 5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그 가운데 본 마을은 학전인데 임진왜란 때 수백마리의 백학이 내려와 난리를 피했다고 해서 '새밭두들'이라고도 불렀다.
석촌리 이성열 이장은 "마을 주민 대부분이 고령자여서 마치 경로당에 어른을 모시고 사는 듯한 분위기"라며 "그래도 전통적인 시골인심이 남아 있고 아래 위로 정이 두터워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말했다.
↑↑ 석촌리 이성열(가운데) 이장이 용암마을 반장댁을 찾아 마을 운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외지에서 들어온 인구에 대해서는 "외지인들은 비교적 젊은이들이어서 이 마을에 마땅한 생업이 없어 대도시에 직장을 두고 살아가고 쇼핑 등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울산에서 해결한다"며 "마을 주민들과의 교류도 조금은 뜸한 편이어서 한 마을의 공동체로서 소속감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용암골 외딴 집에서 살아가는 김문대(84) 할아버지는 5대째 이 마을에서 살았다. 그러니 석촌리의 산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부인 박분자(81) 할머니와 외딴집에서 살아가지만 한 번도 이 마을을 떠난 적이 없어 병원 나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 용두사터에 남아 있는 용의 형상. 머리 부분이 잘렸다가 시멘트로 이어붙인 흔적이 남아 있다.
김 할아버지는 "어릴적 석읍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3년 다니다가 북한군이 쳐들어와 불을 지르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두고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았다"며 "차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골짜기에 묻혀 살면서도 이웃간에 시비 없이 밥 굶지 않았으니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다고 할만하다"고 말했다.
석촌리는 월성원자력본부 제1발전소 기계부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기계부 원종일 주임은 "석촌리의 주민들이 마치 친척들처럼 위화감 없이 잘 지내고 있다"며 "앞으로 석촌리가 가장 필요한 점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살펴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기계부의 주대근 과장이 석촌리 출신이어서 다른 마을보다 인연이 더 깊다"고 덧붙였다.
↑↑ 용암마을 외딴집에서 살아가는 김문대, 박분순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
5개 자연 자연마을이 평화롭게 연결된 석촌리는 양남면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마을에 속한다. 도로와 잇댄 학전과 울산 북구와 산 하나를 두고 붙어 있는 용암까지 평지와 험준한 산골까지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학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시골에서 사는 삶이 어렵지 않느냐고 묻자 "젊은 사람들이 시골에서 살기 어렵지 늙은 사람들은 정부에서 주는 연금으로 별로 어려움 없이 산다"고 말했다. 병이 들어 의료비가 발생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경제적 어려움이 없다고 말하는 그 주민에게서 석촌리의 풍요로움과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김영식 74949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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