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티안에서 또 하나의 감동적 묘미 `왓 시사켓`… 정갈하지만 신성한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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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작성일20-05-14 19:52본문
↑↑ 왕 시사켓 본당에 그려진 벽화. 이 벽화는 부처님의 전생을 표현한 설화집 자타카를 옮긴 것이다.
[경북신문=이상문기자] 탓담과 함께 비엔티안의 또 하나의 감동적인 곳이 있다.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나는 탓담과 함께 왓 시사켓을 좋아한다. 아시아의 흔한 불교 사찰처럼 장중한 규모와 화려한 건축물을 가지지 않았고, 마치 정갈하게 살다간 귀족의 집처럼 단출하지만 왓 시사켓은 사찰이 주는 신성함을 잘 간직하고 있다.
◆ 전란에도 원형 지킨 왓 시사켓
1818년 건립됐으니 그리 긴 역사를 가진 사원은 아니다. 하지만 왓 시사켓은 숱한 전쟁 속에서도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비엔티안의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시암의 군인들이 탓담의 황금을 노략질 할 당시 비엔티안의 사원들은 모두 불타 없어졌다. 그러나 왓 시사켓은 유일하게 남았다. 그러니 비엔티안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원일 수밖에 없다. 이 사원은 각지의 군주들이 국왕에서 충성을 서약하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왓 시사켓의 중앙에 위치한 본당에는 부처의 전생을 이야기한 설화집인 자타카를 그림으로 옮긴 벽화가 일부 남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보물이다. 흔히들 왓 시사켓의 볼거리로 본당을 둘러싼 긴 회랑에 모셔진 불상들이라고 하지만 나는 자타카에 가장 눈길이 갔다. 미술전문가는 아니지만 내 눈에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보았던 세밀화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다가왔다. 또, 우리나라 사찰의 탱화와도 달랐다. 아름다운 색감의 자타카는 현대적 회화 기법이 보일 정도로 매우 예술성이 뛰어났다.
회랑의 불상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처마를 두른 회랑을 가득 메운 불상들은 장관이다. 왓 시사켓의 불상들은 모두 6천 여 개가 넘는다. 가히 불상박물관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의 다양한 크기와 형태, 부재들로 만들어진 불상들은 16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비엔티안에서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더러는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루앙프라방에서 만들어진 불상들도 있다고 한다. 목이 잘려나간 불상은 부지기수고 부처님의 눈알이 달아난 불상이 대부분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왜 하필 부처님의 눈알이 빠져 있을까? 알고 보니 보석으로 치장된 눈을 누군가가 훔쳐간 까닭이었다.
↑↑ 왓시사켓에 보관된 나가상. 위의 나가상은 사원 주변 회랑에 놓인 오래된 것이고 아래 나가상은 본당 뒤의 비교적 현대에 만든 것이다.
◆ 왓 시사켓의 보물 나가상
그리고 왓 시사켓의 또 하나의 충격적인 보물은 바로 나가상이다. 본당 인근에는 두 개의 나가상이 있다. 하나는 본당의 뒤쪽에 있는 비교적 현대에 만든 것이고, 하나는 불상들이 진열된 회랑에 놓인 낡은 나가상이다. 두 개 모두 나무로 조각한 것인데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새것은 색상이 화려하다. 라오스의 아름다운 문화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 같다. 그리고 조각의 디테일이 도드라진다. 한 번 보고는 얼른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색채미를 가지고 있다. 낡은 것은 은근한 당김이 있다.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은 라오스를 수호한 나가의 엄중함이 도사린 듯하다. 몇 군데의 조각이 떨어져 나갔지만 고풍스러운 멋이 새것에서 느낄 수 없는 단호함을 품고 있다.
나가상은 라오스 사찰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본당에 오르거나 높은 건축물에 오르는 계단의 난간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왓 시사켓의 나가상은 그 중 가장 아름답고 정교해서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비엔티안이 자랑할 만한 사원 왓 시사켓. 우르르 몰려가서 대충 보고 나올 곳이 아니다. 시간적 제약을 따라야 하는 패키지 여행객들은 아쉬움을 안고 발길을 돌려야 한다.
↑↑ 왓시사켓 회랑에 보관된 불상들. 모두 약 6000여개가 넘는다고 한다.
◆ 불상박물관으로 변한 왕실사원 호 프라깨우
태국 방콕을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은 왕실사원인 왓 프라깨우를 방문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높이 60cm의 에메랄드 불상을 보지 못한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이 불상은 태국의 국보 1호다. 에메랄드 불상이 처음 발견된 곳은 태국의 북부 치앙라이였다. 15세기 초반 치앙라이에 있던 한 탑이 번개에 맞아 파고됐는데 그 속에서 신성한 불상 하나가 발견됐다. 그것이 바로 에메랄드 불상이었다. 에메랄드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 불상은 옥으로 만들어졌다. 과거 스리랑카에서 만들어 치앙라이에 세워졌던 태국의 란나 왕조에 전해졌다고 한다.
이 불상을 둘러싼 주변국가의 쟁탈전은 치열했다. 치앙라이에서 발견된 불상은 란나 왕조의 수도였던 근처 도시인 치앙마이로 옮겨졌다. 불상이 옮겨지면서 란나 왕조는 크게 부흥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호시탐탐 불상이 주는 행운을 노리던 라오스의 란상왕국이 란나왕국을 침공해 비엔티안으로 옮겨왔다. 그 후 란상왕국도 크게 부흥했다. 원래의 소유였던 태국이 가만이 앉아서 두고볼 일은 아니었다. 란상왕국의 국력이 쇠퇴할 무렵 태국의 짜끄리왕국의 라마1세가 라오스를 침략해 왕국의 수도인 방콕으로 다시 빼앗아 가고 말았다.
현재까지 라오스는 에메랄드 불상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태국에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어불성설이다. 태국의 국력으로 봐서 그 요청이 받아들여지기는 절대 불가다. 두 나라 모두 불교를 국교로 여기는 나리이고, 불상은 이미 태국의 국보 1호로 지정돼 있다. 아무튼 에메랄드 불상을 프라깨우라고 칭하며 불상이 보관됐던 치앙라이, 치앙마이, 비엔티안, 방콕에는 프라깨우 사원, 즉 왓 프라깨우가 있다.
비엔티안의 왓 시사켓 맞은편에 있는 사원이 바로 란상왕국 때 에메랄드 불상이 모셔져 있던 사원인 호 프라깨우다. 과거 왕실사원으로 존재하던 호 프라깨우는 과거의 영화를 뒤로한 채 현재는 불상 등을 전시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565년 지어졌으나 시암의 침공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1936년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됐다. 박물관 안에는 다양한 란상왕국의 불상들과 불구들이 전시돼 있다. 라오스 불교를 연구하기 위한 소중한 자료들이 보관돼 있는 셈이다.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지어졌던 왕실사원. 한 때 행운을 가져다 주는 신성한 에메랄드 불상을 모셨던 사원은, 지금 그 위엄이 사라지고 소박한 종교박물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문 iou518@naver.com
[경북신문=이상문기자] 탓담과 함께 비엔티안의 또 하나의 감동적인 곳이 있다.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나는 탓담과 함께 왓 시사켓을 좋아한다. 아시아의 흔한 불교 사찰처럼 장중한 규모와 화려한 건축물을 가지지 않았고, 마치 정갈하게 살다간 귀족의 집처럼 단출하지만 왓 시사켓은 사찰이 주는 신성함을 잘 간직하고 있다.
◆ 전란에도 원형 지킨 왓 시사켓
1818년 건립됐으니 그리 긴 역사를 가진 사원은 아니다. 하지만 왓 시사켓은 숱한 전쟁 속에서도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비엔티안의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시암의 군인들이 탓담의 황금을 노략질 할 당시 비엔티안의 사원들은 모두 불타 없어졌다. 그러나 왓 시사켓은 유일하게 남았다. 그러니 비엔티안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원일 수밖에 없다. 이 사원은 각지의 군주들이 국왕에서 충성을 서약하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왓 시사켓의 중앙에 위치한 본당에는 부처의 전생을 이야기한 설화집인 자타카를 그림으로 옮긴 벽화가 일부 남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보물이다. 흔히들 왓 시사켓의 볼거리로 본당을 둘러싼 긴 회랑에 모셔진 불상들이라고 하지만 나는 자타카에 가장 눈길이 갔다. 미술전문가는 아니지만 내 눈에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보았던 세밀화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다가왔다. 또, 우리나라 사찰의 탱화와도 달랐다. 아름다운 색감의 자타카는 현대적 회화 기법이 보일 정도로 매우 예술성이 뛰어났다.
회랑의 불상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처마를 두른 회랑을 가득 메운 불상들은 장관이다. 왓 시사켓의 불상들은 모두 6천 여 개가 넘는다. 가히 불상박물관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의 다양한 크기와 형태, 부재들로 만들어진 불상들은 16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비엔티안에서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더러는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루앙프라방에서 만들어진 불상들도 있다고 한다. 목이 잘려나간 불상은 부지기수고 부처님의 눈알이 달아난 불상이 대부분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왜 하필 부처님의 눈알이 빠져 있을까? 알고 보니 보석으로 치장된 눈을 누군가가 훔쳐간 까닭이었다.
↑↑ 왓시사켓에 보관된 나가상. 위의 나가상은 사원 주변 회랑에 놓인 오래된 것이고 아래 나가상은 본당 뒤의 비교적 현대에 만든 것이다.
◆ 왓 시사켓의 보물 나가상
그리고 왓 시사켓의 또 하나의 충격적인 보물은 바로 나가상이다. 본당 인근에는 두 개의 나가상이 있다. 하나는 본당의 뒤쪽에 있는 비교적 현대에 만든 것이고, 하나는 불상들이 진열된 회랑에 놓인 낡은 나가상이다. 두 개 모두 나무로 조각한 것인데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새것은 색상이 화려하다. 라오스의 아름다운 문화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 같다. 그리고 조각의 디테일이 도드라진다. 한 번 보고는 얼른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색채미를 가지고 있다. 낡은 것은 은근한 당김이 있다.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은 라오스를 수호한 나가의 엄중함이 도사린 듯하다. 몇 군데의 조각이 떨어져 나갔지만 고풍스러운 멋이 새것에서 느낄 수 없는 단호함을 품고 있다.
나가상은 라오스 사찰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본당에 오르거나 높은 건축물에 오르는 계단의 난간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왓 시사켓의 나가상은 그 중 가장 아름답고 정교해서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비엔티안이 자랑할 만한 사원 왓 시사켓. 우르르 몰려가서 대충 보고 나올 곳이 아니다. 시간적 제약을 따라야 하는 패키지 여행객들은 아쉬움을 안고 발길을 돌려야 한다.
↑↑ 왓시사켓 회랑에 보관된 불상들. 모두 약 6000여개가 넘는다고 한다.
◆ 불상박물관으로 변한 왕실사원 호 프라깨우
태국 방콕을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은 왕실사원인 왓 프라깨우를 방문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높이 60cm의 에메랄드 불상을 보지 못한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이 불상은 태국의 국보 1호다. 에메랄드 불상이 처음 발견된 곳은 태국의 북부 치앙라이였다. 15세기 초반 치앙라이에 있던 한 탑이 번개에 맞아 파고됐는데 그 속에서 신성한 불상 하나가 발견됐다. 그것이 바로 에메랄드 불상이었다. 에메랄드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 불상은 옥으로 만들어졌다. 과거 스리랑카에서 만들어 치앙라이에 세워졌던 태국의 란나 왕조에 전해졌다고 한다.
이 불상을 둘러싼 주변국가의 쟁탈전은 치열했다. 치앙라이에서 발견된 불상은 란나 왕조의 수도였던 근처 도시인 치앙마이로 옮겨졌다. 불상이 옮겨지면서 란나 왕조는 크게 부흥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호시탐탐 불상이 주는 행운을 노리던 라오스의 란상왕국이 란나왕국을 침공해 비엔티안으로 옮겨왔다. 그 후 란상왕국도 크게 부흥했다. 원래의 소유였던 태국이 가만이 앉아서 두고볼 일은 아니었다. 란상왕국의 국력이 쇠퇴할 무렵 태국의 짜끄리왕국의 라마1세가 라오스를 침략해 왕국의 수도인 방콕으로 다시 빼앗아 가고 말았다.
현재까지 라오스는 에메랄드 불상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태국에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어불성설이다. 태국의 국력으로 봐서 그 요청이 받아들여지기는 절대 불가다. 두 나라 모두 불교를 국교로 여기는 나리이고, 불상은 이미 태국의 국보 1호로 지정돼 있다. 아무튼 에메랄드 불상을 프라깨우라고 칭하며 불상이 보관됐던 치앙라이, 치앙마이, 비엔티안, 방콕에는 프라깨우 사원, 즉 왓 프라깨우가 있다.
비엔티안의 왓 시사켓 맞은편에 있는 사원이 바로 란상왕국 때 에메랄드 불상이 모셔져 있던 사원인 호 프라깨우다. 과거 왕실사원으로 존재하던 호 프라깨우는 과거의 영화를 뒤로한 채 현재는 불상 등을 전시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565년 지어졌으나 시암의 침공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1936년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됐다. 박물관 안에는 다양한 란상왕국의 불상들과 불구들이 전시돼 있다. 라오스 불교를 연구하기 위한 소중한 자료들이 보관돼 있는 셈이다.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지어졌던 왕실사원. 한 때 행운을 가져다 주는 신성한 에메랄드 불상을 모셨던 사원은, 지금 그 위엄이 사라지고 소박한 종교박물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문 iou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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