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진 문화칼럼] 고독한 사자와 표범 헤밍웨이의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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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유진 작성일20-05-07 19:08본문
↑↑ 소설가 서유진꿈은 억눌린 무의식의 표출이라고 한다. 똑같은 꿈을 늘 반복해서 꾼다면 괴로울 것도 같다. 어떤 젊은 여성은 매일 밤 과거의 연인을 만나려는 순간 꿈을 깬다고 한다. 어떤 노인은 캄캄한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꿈을 깬다고 한다. 또 어떤 소녀는 지렁이와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땅에서 발 디딜 곳이 없어 소리를 지르며 깨어난다고 한다. 꿈을 꾸는 사람의 무의식이 어떠냐에 따라 꿈의 내용이 사뭇 다르다.
헤밍웨이의 소설 속 산티아고 노인은 늘 아프리카의 꿈을 꾸었는데 꿈속의 그는 소년이었다. 노인은 꿈속에서 해안에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었고, 파도를 헤치면서 달려오는 토인들의 배와 갑판의 타아르 냄새와 뱃밥 냄새를 맡았다. 대륙의 미풍이 불어다 주는 아프리카의 냄새를 맡으며 잠을 깨던 노인이 오늘은 시간이 일러 계속 꿈을 꾼다. 이제는 폭풍우나 여자, 큰 사건, 큰 고기, 싸움, 과거 팔씨름에서 최고였던 힘겨루기 시합, 세상을 떠난 아내의 꿈은 꾸지 않는다.
대신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사자를 본다. 사자들은 황혼이 찾아드는 해안에서 어린 고양이처럼 뛰놀고 있었고, 노인은 그가 소년을 사랑하듯이 사자들을 사랑했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노인의 꿈에 소년은 나타나지 않는다. 노인은 힘든 상황이나 외로울 때 늘 소년을 생각한다. 그 애가 있었으면… 하는 말을 자주 되뇌는 노인이 다음 문장에서는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낸다.
"늙으면 그저 외로운 꼴은 안 당해야지" 하고서는 바로 정정하듯 "그러나 불가피하지"라고 말한다. 인생에서 불가피한 경우가 허다한 건 사실이다. 순순히 받아들이는 노인은 유연성을 보인다. 그러나 노인은 너무나 지친 상황에서도 "세상의 그 누구도 가지 못하는 그곳까지 고기를 찾아가겠다"며 다짐하며 강한 의지를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신이 어부가 되지 말아야 했다'는 후회를 하고, 또다시 '그러나 나는 어부가 되려고 태어났지' 하고 자신의 직업에 대한 긍지를 드러낸다. 고기와 사투를 벌이면서 지쳐버린 노인은 '바라건대, 저 고기가 잠들어서 나도 잠들고, 그리고 사자의 꿈이나 꾸었으면'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 한편, 밧줄이 스쳐 입은 상처의 아픔을 견디면서 인간은 맹수보다 더 강하지 못하지만, 저 깊은 바닷속에 있는 저 녀석만큼은 강하고 싶다고 호소한다. 강자에 대한 열망과 불요불굴의 의지에 대한 갈망이 사자 꿈으로 환치된다.
온갖 고생 끝에 노인은 상어에게 다 뜯어 먹혀 뼈만 남은 대어를 데리고 육지에 닿는다. 돌아오는 길에서 쓰러졌으나 오막살이로 돌아온다. 소년은 죽은 듯이 자는 노인이 숨을 쉬는 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고, 노인에게 줄 커피를 가지러 가면서도 내내 울었다.
'소년은 옆에서 노인을 지켜보고 있었고, 노인은 사자의 꿈을 꾸고 있었다'는 문장으로 소설이 끝난다. 젊은 시절에는 힘 꽤나 쓰고, 고기 잡는 기술도 뛰어나 먼바다를 누볐던, 불굴의 의지와 강인함을 가진 이 겸손한 노인을 생각하면 작가 헤밍웨이가 떠오른다.
헤밍웨이는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기자가 된다. 지금 시대 같으면 불가능했지만 1차 세계대전 전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는 이탈리아 전선에 종군하며 부상을 당하고, 특파원으로 그리스-터기 전쟁을 보도하고, 에스파냐 내란에도 가담하는 등 남다른 체험을 하며 역동적인 삶을 산 행동주의 작가였다. 그의 단편 중 최고 걸작으로 알려진 '킬리만자로의 눈'은 그가 아프리카 여행의 체험으로 쓴 단편이다. 작품의 에피그램을 주목해보자.
높이 19,710 피트의 눈으로 덮인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의 서쪽 봉우리에 말라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가 있다. 그 높은 산봉우리 위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 그걸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면 이 에피그램이 주제로 남을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해리도 죽기 전에 산티아고 노인처럼 꿈을 꾸었다. 해리를 태운 비행기가 장대처럼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날아간다. 비는 불행의 상징, 그 불행을 초월하여 다다르려는 이상을 향해 해리는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눈부시게 새하얀 킬리만자로의 봉우리! 거기가 바로 자기의 목적지라고, 해리는 꿈을 꾸며 죽음에 이른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해리의 상징이고, 아프리카의 사자는 산티아고 노인의 상징이다.
55세에 '노인과 바다'를 200번이나 추고해서 노벨상을 받은 헤밍웨이, 그는 62세의 나이로 우울증과 고혈압과 당뇨로 요양하던 중 의문의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인간은 젊음과 강인한 체력과 무한한 정신력을 가졌다 해도 궁극에는 영원한 강함을 꿈꾸는 고독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종횡무진 인생길을 달렸던 헤밍웨이도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아프리카 바닷가의 사자 꿈을 꾸며 죽음에 이르렀을 것이다.
소설가 서유진 kua348@naver.com
헤밍웨이의 소설 속 산티아고 노인은 늘 아프리카의 꿈을 꾸었는데 꿈속의 그는 소년이었다. 노인은 꿈속에서 해안에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었고, 파도를 헤치면서 달려오는 토인들의 배와 갑판의 타아르 냄새와 뱃밥 냄새를 맡았다. 대륙의 미풍이 불어다 주는 아프리카의 냄새를 맡으며 잠을 깨던 노인이 오늘은 시간이 일러 계속 꿈을 꾼다. 이제는 폭풍우나 여자, 큰 사건, 큰 고기, 싸움, 과거 팔씨름에서 최고였던 힘겨루기 시합, 세상을 떠난 아내의 꿈은 꾸지 않는다.
대신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사자를 본다. 사자들은 황혼이 찾아드는 해안에서 어린 고양이처럼 뛰놀고 있었고, 노인은 그가 소년을 사랑하듯이 사자들을 사랑했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노인의 꿈에 소년은 나타나지 않는다. 노인은 힘든 상황이나 외로울 때 늘 소년을 생각한다. 그 애가 있었으면… 하는 말을 자주 되뇌는 노인이 다음 문장에서는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낸다.
"늙으면 그저 외로운 꼴은 안 당해야지" 하고서는 바로 정정하듯 "그러나 불가피하지"라고 말한다. 인생에서 불가피한 경우가 허다한 건 사실이다. 순순히 받아들이는 노인은 유연성을 보인다. 그러나 노인은 너무나 지친 상황에서도 "세상의 그 누구도 가지 못하는 그곳까지 고기를 찾아가겠다"며 다짐하며 강한 의지를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신이 어부가 되지 말아야 했다'는 후회를 하고, 또다시 '그러나 나는 어부가 되려고 태어났지' 하고 자신의 직업에 대한 긍지를 드러낸다. 고기와 사투를 벌이면서 지쳐버린 노인은 '바라건대, 저 고기가 잠들어서 나도 잠들고, 그리고 사자의 꿈이나 꾸었으면'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 한편, 밧줄이 스쳐 입은 상처의 아픔을 견디면서 인간은 맹수보다 더 강하지 못하지만, 저 깊은 바닷속에 있는 저 녀석만큼은 강하고 싶다고 호소한다. 강자에 대한 열망과 불요불굴의 의지에 대한 갈망이 사자 꿈으로 환치된다.
온갖 고생 끝에 노인은 상어에게 다 뜯어 먹혀 뼈만 남은 대어를 데리고 육지에 닿는다. 돌아오는 길에서 쓰러졌으나 오막살이로 돌아온다. 소년은 죽은 듯이 자는 노인이 숨을 쉬는 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고, 노인에게 줄 커피를 가지러 가면서도 내내 울었다.
'소년은 옆에서 노인을 지켜보고 있었고, 노인은 사자의 꿈을 꾸고 있었다'는 문장으로 소설이 끝난다. 젊은 시절에는 힘 꽤나 쓰고, 고기 잡는 기술도 뛰어나 먼바다를 누볐던, 불굴의 의지와 강인함을 가진 이 겸손한 노인을 생각하면 작가 헤밍웨이가 떠오른다.
헤밍웨이는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기자가 된다. 지금 시대 같으면 불가능했지만 1차 세계대전 전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는 이탈리아 전선에 종군하며 부상을 당하고, 특파원으로 그리스-터기 전쟁을 보도하고, 에스파냐 내란에도 가담하는 등 남다른 체험을 하며 역동적인 삶을 산 행동주의 작가였다. 그의 단편 중 최고 걸작으로 알려진 '킬리만자로의 눈'은 그가 아프리카 여행의 체험으로 쓴 단편이다. 작품의 에피그램을 주목해보자.
높이 19,710 피트의 눈으로 덮인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의 서쪽 봉우리에 말라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가 있다. 그 높은 산봉우리 위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 그걸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면 이 에피그램이 주제로 남을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해리도 죽기 전에 산티아고 노인처럼 꿈을 꾸었다. 해리를 태운 비행기가 장대처럼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날아간다. 비는 불행의 상징, 그 불행을 초월하여 다다르려는 이상을 향해 해리는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눈부시게 새하얀 킬리만자로의 봉우리! 거기가 바로 자기의 목적지라고, 해리는 꿈을 꾸며 죽음에 이른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해리의 상징이고, 아프리카의 사자는 산티아고 노인의 상징이다.
55세에 '노인과 바다'를 200번이나 추고해서 노벨상을 받은 헤밍웨이, 그는 62세의 나이로 우울증과 고혈압과 당뇨로 요양하던 중 의문의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인간은 젊음과 강인한 체력과 무한한 정신력을 가졌다 해도 궁극에는 영원한 강함을 꿈꾸는 고독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종횡무진 인생길을 달렸던 헤밍웨이도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아프리카 바닷가의 사자 꿈을 꾸며 죽음에 이르렀을 것이다.
소설가 서유진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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