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의 라오스로 소풍갈래?] 감수성으로 얼룩진 서툰 문장을 닮은 20세기 말의 라오스 `그 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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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작성일20-04-09 18:59본문
↑↑ 라오스의 시골도시 방비엥의 쏭강에서 어린 소녀들이 강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처럼 라오스는 아직 문명에서 멀리 비껴 앉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경북신문=이상문기자] 수탉이 길게 울었다. 숙소의 손수건만한 창을 빼곡하게 채웠던 어둠이 천천히 걷히기 시작했다. 내 고단한 새벽잠을 깨운 수탉의 목청은 싱싱했다. 한 놈이 울기 시작하자 동네의 모든 닭들이 따라 울었다. 깊은 산골 아침잠이 없는 새들의 합창과도 같았다. 닭들의 합창이 끝나자 게으른 동네 개들이 그제야 일어나서 짖어대기 시작했다. 어떤 놈은 지악스럽게 짖어댔고 어떤 놈은 자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서, 아, 나도 짖어야 하나보다, 하고 억지로 쉰 목으로 짖어대는 놈도 있었다. 개 짖는 소리는 만국이 동일하다. 기어이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목조건물로 된 게스트하우스의 침대가 삐걱거렸다. 창을 열자 청량한 바람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왔다. 아열대 지역의 새벽바람은 뜻밖에 쾌청했다.
↑↑ 라오스의 대중 교통수단인 툭툭이를 타고 가는 현지인들.
◆ 타임캡슐 속에서 깨어나는 라오스
라오스에서 맞은 첫 새벽은 마치 타임캡슐을 열었을 때 느끼는 경이로움과 흡사했다. 고리짝 깊은 곳에 눌려 있던 낡은 비망록을 펼쳐든 기분이었다. 내 어린 시절 치기어린 감수성으로 얼룩졌던 서툰 문장을 읽어나가는 것처럼 불편했다. 하지만 신선했다. 잊고 살았던 날들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게스트 하우스 마당에는 이층 지붕을 뒤덮을 기세의 키 큰 나무가 풍성한 잎을 거느린 채 늘어져 있었다. 그 나무에는 생전 처음 보는 열대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동녘이 서서히 밝아왔다. 껑충하게 키 큰 나무에 걸렸던 주황색 백열전등이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 나무 아래 게스트하우수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웅크리고 앉아 무슨 일엔가 몰두하고 있었다. 주인은 고물상에서 끌고 온 듯한 폐차 수준의 자동차를 주무르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떨어져 나간 앞바퀴를 굵은 철사로 동여매고 있었다. 사내의 의도대로 그 자동차가 다시 소생해서 도로 위로 나설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어쩌면 그 사내도 자동차가 다시 구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별다른 소일거리를 찾지 못해 새벽잠을 포기하고 마당에 나앉은 지도 모를 일이었다.
부엌으로 보이는 곳에서 그릇을 부시는 소리가 들렸다. 사내의 아내와 딸이 손님의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손님이래야 나 외에는 본 적이 없었다. 간밤, 대여섯 개의 방이 있는 이층 게스트 룸에서 두런거리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내려오자 주인 사내는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싸바이디."
↑↑ 라오스 수도 비엔티엔의 버스터미널에서 가벼운 먹을거리를 파는 행상인.
부엌에 있던 사내의 아내가 물 묻은 손을 훔치며 마당으로 나왔다. 아, 누이의 얼굴이었다. 검은 머릿결을 가지런히 빗어 수건으로 감췄다. 짧은 시간 어둑한 새벽녘에 타국의 여인을 자세히도 봤다고 욕할지 모르지만, 쌍꺼풀이 없는 눈에 입술이 붉었다. 크게 도드라지지 않은 콧날이었지만 단아하게 곧았다. 검정색과 황금색이 혼합된 전통치마인 씬을 입은 안주인은 나를 보자 반갑게 웃으며 합장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곧바로 부엌으로 자취를 감췄다. 돌아서는 여인의 발뒤꿈치는 굳은살이 뭉쳐져 있었다. 종아리부터 발목까지 거무스레한 피부가 이어지다가 뒤꿈치에 이르러 하얗게 도드라졌다. 맨발이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우물과 부엌을 오가던 누이의 뒤꿈치.
◆ 오랜 과거 우리 삶의 모습
게스트하우스를 벗어나 골목을 걸었다. 길섶에 도랑이 흘렀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갔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세찼다. 골목길에는 일제히 짖어댔던 개들이 나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낯선 이가 나타났는데도 경계하는 눈치는 없었다. 그렇다고 반가워하지도 않았다. 개들만 없다면 골목길은 적요했다. 내 기억이라면 이 시각에 우리의 농부들은 쇠스랑을 들고 들로 나갈 무렵이었다. 골목이 깊어질 즈음 개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동네 아낙들이었다. 윗옷은 벗어젖히고 씬을 젖무덤 위로 올린 채 개울물에서 멱을 감고 있었다. 머리도 감고 씬 안으로 손을 넣어 몸도 씻었다. 이방의 사내가 지켜보고 있어도 아랑곳없이 목욕을 멈추지 않았다.
아침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자 안주인은 그새 작은 밥상을 차려 내왔다. 계란을 부치고 토스트를 구워냈다. 그리고 하얀 쌀죽 한 그릇을 정갈한 그릇에 담아내 왔다. 죽 위에 살짝 얹은 고수의 향이 비릿했다. 마당 한 귀퉁이에 마련된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는 순간, 드디어 열대의 햇살이 마당을 가득 채웠다. 주인은 그제야 폐차 앞에서 떨어져 나와 손을 씻었다. 키 큰 나무 위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 높은 소리로 울어댔다. 갑자기 들춰낸 타임캡슐 속의 현실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 방비엥의 새벽시장에서 물고기를 파는 소수민족들.
◆ 가난한 나라의 작은 수도
나는 '은둔의 땅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 전 날 도착했다. 태국 국경 농카이를 넘어 황토빛 비포장도로를 하염없이 달렸다. 구닥다리 중국산 승용차 꼬리가 흙먼지를 뒤엎었고 그 먼지는 도로변 민가의 빨래 위에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비포장도로는 대통령궁까지 이어졌다.
도로 한가운데 파리의 개선문을 닮은 거대한 조형물이 버티고 있었다. 독립 기념탑 빠뚜사이였다. 시멘트로 만든 빠뚜사이는 비엔티안의 랜드 마크 역할을 했다. 탑의 꼭대기에 올라가면 비엔티안의 사방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열대수림이 웃자란 사이사이로 프랑스 식민지 시절 지은 고급 주택가들이 보였다. 대통령궁의 흰색 건물이 보이고 탓루앙의 황금색 탑이 보였다. 간선도로는 곧게 펼쳐져 있었지만 그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는 염병이 훑고 지나간 마을의 나그네처럼 뜸했다.
괴이한 일이었다. 한 나라의 수도가 이처럼 궁벽할 수 있단 말인가. 시늉만 낸 분수대 옆으로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몇 채가 있고 토스트나 얇은 두께의 스테이크를 파는 식당들이 있을 뿐, 외국인 여행자를 위한 배려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해가 지고 한적한 대로변을 걷다가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사라진지 오래된 반딧불이가 소위 중심가라고 일컬어지는 길거리에 지천으로 날아다녔다.
대통령궁 가까이 있는 시장에서 사람들은 저녁거리를 '비닐 봉다리'에 담아 날랐다. 우리에게 익숙한 채소나 양념들이 보였지만 대개가 낯선 음식들이었다. 태국에서도 보기 힘든 괴상한 음식들을 사들고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마치 순대처럼 생긴 소시지와 개구리, 박쥐 튀김, 오소리 구이, 심지어 어른 장딴지만큼 굵은 구렁이 한 토막도 그들이 사 나르는 봉다리에 담겨 있었다.
↑↑ 불교국가 라오스의 고도 루앙프라방에 있는 왕실의 봉안당인 홍깹미이엔.
해가 기울자 시가지는 일제히 어둠 속으로 자맥질했다. 해가 지면 문을 여는 저녁시장에는 호롱불 같이 촉수 낮은 전구를 켜고 중국이나 태국에서 들여왔을 옷가지를 팔거나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생활필수품을 파는 가게들이 다시 라오스의 느린 시간을 이어갔다. 저녁시장에 세워진 노천 음식점에는 시장에서 봤던 괴상한 음식들이 조리되고 있었고 냄새는 지독한 노린내를 풍겼다. 사람들은 간이 좌판에 앉아 구워낸 오소리를 손으로 뜯어가며 먹었고, 오동통 살이 오른 개구리 뒷다리를 맛나게 씹었다. 메콩강에서 잡아 올린 민물고기를 숯불에 구워 대나무 통에 담긴 찹쌀밥과 함께 먹었고, 진한 향기가 나는 채소들을 우리의 멸치젓을 닮은 어간장에 찍어먹었다. 코코넛과 망고를 후식으로 곁들였다.
수도의 밤길은 고즈넉했다. 멀리서 불을 켠 가게의 불빛을 등대 삼아 걸었고 한낮 뜨겁게 달궈졌던 흙길이 저녁바람에 시나브로 식어가는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풀벌레 소리가 문득 가까워졌고 숙소로 돌아가는 골목길이 미로처럼 느껴졌다. 20세기 말, 내가 처음 라오스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이다. 그 땐 정말 그랬다.
이상문 iou518@naver.com
[경북신문=이상문기자] 수탉이 길게 울었다. 숙소의 손수건만한 창을 빼곡하게 채웠던 어둠이 천천히 걷히기 시작했다. 내 고단한 새벽잠을 깨운 수탉의 목청은 싱싱했다. 한 놈이 울기 시작하자 동네의 모든 닭들이 따라 울었다. 깊은 산골 아침잠이 없는 새들의 합창과도 같았다. 닭들의 합창이 끝나자 게으른 동네 개들이 그제야 일어나서 짖어대기 시작했다. 어떤 놈은 지악스럽게 짖어댔고 어떤 놈은 자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서, 아, 나도 짖어야 하나보다, 하고 억지로 쉰 목으로 짖어대는 놈도 있었다. 개 짖는 소리는 만국이 동일하다. 기어이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목조건물로 된 게스트하우스의 침대가 삐걱거렸다. 창을 열자 청량한 바람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왔다. 아열대 지역의 새벽바람은 뜻밖에 쾌청했다.
↑↑ 라오스의 대중 교통수단인 툭툭이를 타고 가는 현지인들.
◆ 타임캡슐 속에서 깨어나는 라오스
라오스에서 맞은 첫 새벽은 마치 타임캡슐을 열었을 때 느끼는 경이로움과 흡사했다. 고리짝 깊은 곳에 눌려 있던 낡은 비망록을 펼쳐든 기분이었다. 내 어린 시절 치기어린 감수성으로 얼룩졌던 서툰 문장을 읽어나가는 것처럼 불편했다. 하지만 신선했다. 잊고 살았던 날들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게스트 하우스 마당에는 이층 지붕을 뒤덮을 기세의 키 큰 나무가 풍성한 잎을 거느린 채 늘어져 있었다. 그 나무에는 생전 처음 보는 열대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동녘이 서서히 밝아왔다. 껑충하게 키 큰 나무에 걸렸던 주황색 백열전등이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 나무 아래 게스트하우수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웅크리고 앉아 무슨 일엔가 몰두하고 있었다. 주인은 고물상에서 끌고 온 듯한 폐차 수준의 자동차를 주무르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떨어져 나간 앞바퀴를 굵은 철사로 동여매고 있었다. 사내의 의도대로 그 자동차가 다시 소생해서 도로 위로 나설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어쩌면 그 사내도 자동차가 다시 구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별다른 소일거리를 찾지 못해 새벽잠을 포기하고 마당에 나앉은 지도 모를 일이었다.
부엌으로 보이는 곳에서 그릇을 부시는 소리가 들렸다. 사내의 아내와 딸이 손님의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손님이래야 나 외에는 본 적이 없었다. 간밤, 대여섯 개의 방이 있는 이층 게스트 룸에서 두런거리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내려오자 주인 사내는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싸바이디."
↑↑ 라오스 수도 비엔티엔의 버스터미널에서 가벼운 먹을거리를 파는 행상인.
부엌에 있던 사내의 아내가 물 묻은 손을 훔치며 마당으로 나왔다. 아, 누이의 얼굴이었다. 검은 머릿결을 가지런히 빗어 수건으로 감췄다. 짧은 시간 어둑한 새벽녘에 타국의 여인을 자세히도 봤다고 욕할지 모르지만, 쌍꺼풀이 없는 눈에 입술이 붉었다. 크게 도드라지지 않은 콧날이었지만 단아하게 곧았다. 검정색과 황금색이 혼합된 전통치마인 씬을 입은 안주인은 나를 보자 반갑게 웃으며 합장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곧바로 부엌으로 자취를 감췄다. 돌아서는 여인의 발뒤꿈치는 굳은살이 뭉쳐져 있었다. 종아리부터 발목까지 거무스레한 피부가 이어지다가 뒤꿈치에 이르러 하얗게 도드라졌다. 맨발이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우물과 부엌을 오가던 누이의 뒤꿈치.
◆ 오랜 과거 우리 삶의 모습
게스트하우스를 벗어나 골목을 걸었다. 길섶에 도랑이 흘렀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갔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세찼다. 골목길에는 일제히 짖어댔던 개들이 나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낯선 이가 나타났는데도 경계하는 눈치는 없었다. 그렇다고 반가워하지도 않았다. 개들만 없다면 골목길은 적요했다. 내 기억이라면 이 시각에 우리의 농부들은 쇠스랑을 들고 들로 나갈 무렵이었다. 골목이 깊어질 즈음 개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동네 아낙들이었다. 윗옷은 벗어젖히고 씬을 젖무덤 위로 올린 채 개울물에서 멱을 감고 있었다. 머리도 감고 씬 안으로 손을 넣어 몸도 씻었다. 이방의 사내가 지켜보고 있어도 아랑곳없이 목욕을 멈추지 않았다.
아침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자 안주인은 그새 작은 밥상을 차려 내왔다. 계란을 부치고 토스트를 구워냈다. 그리고 하얀 쌀죽 한 그릇을 정갈한 그릇에 담아내 왔다. 죽 위에 살짝 얹은 고수의 향이 비릿했다. 마당 한 귀퉁이에 마련된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는 순간, 드디어 열대의 햇살이 마당을 가득 채웠다. 주인은 그제야 폐차 앞에서 떨어져 나와 손을 씻었다. 키 큰 나무 위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 높은 소리로 울어댔다. 갑자기 들춰낸 타임캡슐 속의 현실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 방비엥의 새벽시장에서 물고기를 파는 소수민족들.
◆ 가난한 나라의 작은 수도
나는 '은둔의 땅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 전 날 도착했다. 태국 국경 농카이를 넘어 황토빛 비포장도로를 하염없이 달렸다. 구닥다리 중국산 승용차 꼬리가 흙먼지를 뒤엎었고 그 먼지는 도로변 민가의 빨래 위에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비포장도로는 대통령궁까지 이어졌다.
도로 한가운데 파리의 개선문을 닮은 거대한 조형물이 버티고 있었다. 독립 기념탑 빠뚜사이였다. 시멘트로 만든 빠뚜사이는 비엔티안의 랜드 마크 역할을 했다. 탑의 꼭대기에 올라가면 비엔티안의 사방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열대수림이 웃자란 사이사이로 프랑스 식민지 시절 지은 고급 주택가들이 보였다. 대통령궁의 흰색 건물이 보이고 탓루앙의 황금색 탑이 보였다. 간선도로는 곧게 펼쳐져 있었지만 그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는 염병이 훑고 지나간 마을의 나그네처럼 뜸했다.
괴이한 일이었다. 한 나라의 수도가 이처럼 궁벽할 수 있단 말인가. 시늉만 낸 분수대 옆으로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몇 채가 있고 토스트나 얇은 두께의 스테이크를 파는 식당들이 있을 뿐, 외국인 여행자를 위한 배려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해가 지고 한적한 대로변을 걷다가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사라진지 오래된 반딧불이가 소위 중심가라고 일컬어지는 길거리에 지천으로 날아다녔다.
대통령궁 가까이 있는 시장에서 사람들은 저녁거리를 '비닐 봉다리'에 담아 날랐다. 우리에게 익숙한 채소나 양념들이 보였지만 대개가 낯선 음식들이었다. 태국에서도 보기 힘든 괴상한 음식들을 사들고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마치 순대처럼 생긴 소시지와 개구리, 박쥐 튀김, 오소리 구이, 심지어 어른 장딴지만큼 굵은 구렁이 한 토막도 그들이 사 나르는 봉다리에 담겨 있었다.
↑↑ 불교국가 라오스의 고도 루앙프라방에 있는 왕실의 봉안당인 홍깹미이엔.
해가 기울자 시가지는 일제히 어둠 속으로 자맥질했다. 해가 지면 문을 여는 저녁시장에는 호롱불 같이 촉수 낮은 전구를 켜고 중국이나 태국에서 들여왔을 옷가지를 팔거나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생활필수품을 파는 가게들이 다시 라오스의 느린 시간을 이어갔다. 저녁시장에 세워진 노천 음식점에는 시장에서 봤던 괴상한 음식들이 조리되고 있었고 냄새는 지독한 노린내를 풍겼다. 사람들은 간이 좌판에 앉아 구워낸 오소리를 손으로 뜯어가며 먹었고, 오동통 살이 오른 개구리 뒷다리를 맛나게 씹었다. 메콩강에서 잡아 올린 민물고기를 숯불에 구워 대나무 통에 담긴 찹쌀밥과 함께 먹었고, 진한 향기가 나는 채소들을 우리의 멸치젓을 닮은 어간장에 찍어먹었다. 코코넛과 망고를 후식으로 곁들였다.
수도의 밤길은 고즈넉했다. 멀리서 불을 켠 가게의 불빛을 등대 삼아 걸었고 한낮 뜨겁게 달궈졌던 흙길이 저녁바람에 시나브로 식어가는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풀벌레 소리가 문득 가까워졌고 숙소로 돌아가는 골목길이 미로처럼 느껴졌다. 20세기 말, 내가 처음 라오스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이다. 그 땐 정말 그랬다.
이상문 iou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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