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호 수요칼럼] 기도와 찬양은 감사에 대한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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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고문·교육행정학박사 손경… 작성일20-04-07 18:04본문
↑↑ 논설고문·교육행정학박사 손경호교육학자 페스탈로치는, "종교는 인간 도야 (수양)의 근본이다"
인간을 스스로가 연약한 존재로 알고 있다. 그래서 환란이나 고통을 당했을 때 사람 아닌 절대자를 믿고 의지하는 본성이 있다. 신앙을 통한 인간의 믿음은 사람이 바라는 것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정해 주는 것이며, 건전한 판단은 지성의 승리이고, 믿음은 마음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믿음을 통한 신앙에서 열망의 모습을 가진 것이 곧 사랑인 것이다. 신에게 귀의 하 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귀의'는 종교적 초월자 또는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그에게 의지함을 말한다, 그래서 그에 합당한 행동으로 따르기를 원하고, 나 또한 너를 멀리하지도, 버리지도 않겠노라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신자들은 믿고 의지할 수 없는 것이 신앙이요, 종교이다.
사실 종교는 생활의 부패를 막는 기름이요, 향로이다. 그래서 한 때는 칼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요, 종교의 본질은 사유(생각)도 행위도 아니고, 직관(직각)과 감정이다,
사람이 종교를 신봉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참된 종교의 목적은, 인간 윤리의 원칙을 구원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간직하며 애모하는 것이다.
종교가 모든 죄악을 막는 방부제 역할 뿐만 아니라 마음의 안정제 역할도 하고, 인간에게 최대의 기쁨과 소망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 어떤 것보다 강한 능력 (힘)을 가지고 있고, 이 세상에서 유일의 진실된 원동력임을 믿고 의지하는 까닭이다. 신앙을 가진 종교인의 힘이란 상상을 초원하며, 산(山)도 옮길 수 있는 신념과 믿음에 있다. 기도문에도, "우리(신자)는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항상 고백하며 기도한다.
"신앙은 소망하는 것의 바탕.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이며, 그것이 본질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신앙을 신봉하는 이유 중에, 행복한 사람은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 가난한 사람은 의지하기 위하여, 불행한 사람은 굴복하지 않기 위하여, 각각 신앙을 필요로 하고, 비참한 사람들에게는 위안이 되지만, 행운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신앙과 마음의 관계는 시(詩)와 상상력의 관계와 같다.
그래서 시에서 찬양이 도출되는 것이다.
모든 종교에는 신을 찬양하고 칭송하는 찬가가 반드시 존재한다. 찬가는 찬미의 뜻을 나타내는 노래이며 신성한 대상을 찬양하는 기도의 노래요, 사람과 은총을 기리는 칭송의 음악이다.
조용히 묵상하는 기도는 혼을 지키는 성채(성과 요새)이다. 찬미가는 시가 있고 곡조가 있는 기도의 부류에 속한다. 기도가 곧 힘의 저장소인 것처럼, 찬양(찬송)은 영혼을 깨우는 힘의 폭발이라 한다.
신의 관념은 광명이다. 사람을 인도하고 기쁘게 하는 광명이고, 소망과 기쁨은 그 광명의 양식인 것이다. 신앙이 투철한 신자는 기도와 찬양을 괴로움을 가볍게 하고 기쁨을 순화시킨다. 신자의 정신을 즐겁게 하고, 마음에 신의 향기를 뿌린다.
그러므로 기도할 수 있는 신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최대 욕망 가운데 하나이다. 신을 마음에 두고 날마다 기도하는 것이 인간을 새롭게 만든다고 믿는다.
찬양이라는 말의 원뜻은 아름다움을 기리고 착한 마음씨를 드러냄이지만, 성인(聖人)의 길과 덕을 탐구하며 숭앙(높이며 우러러 봄) 한 것에 원인을 둔 말이다. 어느 시인이 기독교 신자인 필자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는 까닭을 문의했다.
필자는 주저없이, "내가 주님을 찬송하는 신앙고백은, 그 분의 한량없는 은총에 감사하여 울지 못해 부르는 노래가 찬양"이라고 했다. 기도와 찬양은 그지없는 기적에 대한 신자의 보은이라 단언하고 싶다.
논설고문·교육행정학박사 손경… kua348@naver.com
인간을 스스로가 연약한 존재로 알고 있다. 그래서 환란이나 고통을 당했을 때 사람 아닌 절대자를 믿고 의지하는 본성이 있다. 신앙을 통한 인간의 믿음은 사람이 바라는 것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정해 주는 것이며, 건전한 판단은 지성의 승리이고, 믿음은 마음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믿음을 통한 신앙에서 열망의 모습을 가진 것이 곧 사랑인 것이다. 신에게 귀의 하 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귀의'는 종교적 초월자 또는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그에게 의지함을 말한다, 그래서 그에 합당한 행동으로 따르기를 원하고, 나 또한 너를 멀리하지도, 버리지도 않겠노라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신자들은 믿고 의지할 수 없는 것이 신앙이요, 종교이다.
사실 종교는 생활의 부패를 막는 기름이요, 향로이다. 그래서 한 때는 칼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요, 종교의 본질은 사유(생각)도 행위도 아니고, 직관(직각)과 감정이다,
사람이 종교를 신봉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참된 종교의 목적은, 인간 윤리의 원칙을 구원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간직하며 애모하는 것이다.
종교가 모든 죄악을 막는 방부제 역할 뿐만 아니라 마음의 안정제 역할도 하고, 인간에게 최대의 기쁨과 소망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 어떤 것보다 강한 능력 (힘)을 가지고 있고, 이 세상에서 유일의 진실된 원동력임을 믿고 의지하는 까닭이다. 신앙을 가진 종교인의 힘이란 상상을 초원하며, 산(山)도 옮길 수 있는 신념과 믿음에 있다. 기도문에도, "우리(신자)는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항상 고백하며 기도한다.
"신앙은 소망하는 것의 바탕.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이며, 그것이 본질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신앙을 신봉하는 이유 중에, 행복한 사람은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 가난한 사람은 의지하기 위하여, 불행한 사람은 굴복하지 않기 위하여, 각각 신앙을 필요로 하고, 비참한 사람들에게는 위안이 되지만, 행운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신앙과 마음의 관계는 시(詩)와 상상력의 관계와 같다.
그래서 시에서 찬양이 도출되는 것이다.
모든 종교에는 신을 찬양하고 칭송하는 찬가가 반드시 존재한다. 찬가는 찬미의 뜻을 나타내는 노래이며 신성한 대상을 찬양하는 기도의 노래요, 사람과 은총을 기리는 칭송의 음악이다.
조용히 묵상하는 기도는 혼을 지키는 성채(성과 요새)이다. 찬미가는 시가 있고 곡조가 있는 기도의 부류에 속한다. 기도가 곧 힘의 저장소인 것처럼, 찬양(찬송)은 영혼을 깨우는 힘의 폭발이라 한다.
신의 관념은 광명이다. 사람을 인도하고 기쁘게 하는 광명이고, 소망과 기쁨은 그 광명의 양식인 것이다. 신앙이 투철한 신자는 기도와 찬양을 괴로움을 가볍게 하고 기쁨을 순화시킨다. 신자의 정신을 즐겁게 하고, 마음에 신의 향기를 뿌린다.
그러므로 기도할 수 있는 신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최대 욕망 가운데 하나이다. 신을 마음에 두고 날마다 기도하는 것이 인간을 새롭게 만든다고 믿는다.
찬양이라는 말의 원뜻은 아름다움을 기리고 착한 마음씨를 드러냄이지만, 성인(聖人)의 길과 덕을 탐구하며 숭앙(높이며 우러러 봄) 한 것에 원인을 둔 말이다. 어느 시인이 기독교 신자인 필자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는 까닭을 문의했다.
필자는 주저없이, "내가 주님을 찬송하는 신앙고백은, 그 분의 한량없는 은총에 감사하여 울지 못해 부르는 노래가 찬양"이라고 했다. 기도와 찬양은 그지없는 기적에 대한 신자의 보은이라 단언하고 싶다.
논설고문·교육행정학박사 손경…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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