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보훈청, 3월 현충시설 `이명균 의사 유적지`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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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현 작성일20-03-04 16:13본문
[경북신문=지우현기자] 대구지방보훈청은 4일 이달의 우리 지역 현충시설로 경북 김천시에 소재한 '이명균 의사 유적지‘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경북 김천 출신인 이 의사는 조선총독 데라우치가 해인사를 방문할 때 편강렬과 함께 암살을 계획했으나 실패했다.
3·1운동 때는 경상도 지역의 만세시위를 주도했으며 유림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파리장서에 서명해 일본경찰에 붙잡혔으나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1920년 3월 김천에서 김찬규·신태식·이응수 등과 해외독립운동단체와 긴밀히 호응해 국권회복에 이바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을 조직하고 경상북도 재무총장에 취임해 군자금 모집에 힘쓰는 한편, 자신의 가산 또한 군자금으로 내놓는 등 거액의 군자금을 상해임시정부로 송금했다.
이후 경상남북도 각지에서 군자금모금활동을 전개하던 중 1922년 11월 일본경찰에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받은 끝에 이듬해 3월에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얼마 후 순국했다.
이명균의사 유족회에서는 이명균 의사의 숭고한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9년 본 유적지를 건립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국가유공자의 공훈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건축물, 조형물, 사적지 또는 국가유공자의 공헌이나 희생이 있었던 일정한 장소 등을 현충시설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2011년 6월 ‘이명균 의사 유적지’를 현충시설로 지정했다.
한편 대구보훈청은 국민들이 즐겨 찾는 역사교육의 현장·체험의 장소로 현충시설을 보다 친숙하게 접할 수 있도록 매월 이 달의 현충시설을 선정해 소개하고 있다.
지우현 uhyeon6529@daum.net
경북 김천 출신인 이 의사는 조선총독 데라우치가 해인사를 방문할 때 편강렬과 함께 암살을 계획했으나 실패했다.
3·1운동 때는 경상도 지역의 만세시위를 주도했으며 유림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파리장서에 서명해 일본경찰에 붙잡혔으나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1920년 3월 김천에서 김찬규·신태식·이응수 등과 해외독립운동단체와 긴밀히 호응해 국권회복에 이바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을 조직하고 경상북도 재무총장에 취임해 군자금 모집에 힘쓰는 한편, 자신의 가산 또한 군자금으로 내놓는 등 거액의 군자금을 상해임시정부로 송금했다.
이후 경상남북도 각지에서 군자금모금활동을 전개하던 중 1922년 11월 일본경찰에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받은 끝에 이듬해 3월에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얼마 후 순국했다.
이명균의사 유족회에서는 이명균 의사의 숭고한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9년 본 유적지를 건립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국가유공자의 공훈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건축물, 조형물, 사적지 또는 국가유공자의 공헌이나 희생이 있었던 일정한 장소 등을 현충시설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2011년 6월 ‘이명균 의사 유적지’를 현충시설로 지정했다.
한편 대구보훈청은 국민들이 즐겨 찾는 역사교육의 현장·체험의 장소로 현충시설을 보다 친숙하게 접할 수 있도록 매월 이 달의 현충시설을 선정해 소개하고 있다.
지우현 uhyeon652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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