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서도 그림 그리며 한붓 한붓 행복 수놓는 김숙정 여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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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교 작성일19-10-03 17:51본문
↑↑ 김숙정 화가 여성으로서 진지하고 섬세한 작업 모습.
[경북신문=서인교기자] 경북신문이 영남의 예술가 회원 작가들의 근황과 작품세계를 살펴본다.
여덟 번째인 김숙정 여류화가. 김 화가는 늘 화지에,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수는 없지만 상상 속에서는 맘껏 24시간 그려낼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꿈속에서 조차도 그릴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되뇐다. 김 화가는 누구이며 그의 작품세계는 어떠한지 들여다본다.
◆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나
- 유아기 무렵, 끄적거릴 도구만 있으면 연필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면서 연필과 볼펜을 주먹 쥔 상태로 낙서를 했다. 글도 쓸 줄 모르는 시절에는 내가 불러 준대로 글을 써달라고 해서 이야기집(동화책)이 만들어지곤 했다. 이러한 행위들로 이뤄진 나의 그림은 언어였고 글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그림 잘 그리는 아이, 그림상을 독차지하는 아이로 인정받으며 칭찬과 관심 속에 나의 꿈은 자연스레 '화가'가 됐다. 그리고 자신 있게 장래희망이라는 빈칸에는 화가로 채워졌다.
언젠가 엄마에게 물었다. "나는 어쩌다 그림을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됐을까?"라고. 엄마 뱃속에 내가 있을 때 엄마는 주구장창 스타일화를 그렸었다고 했다. 엄마는 서울에서 유명한 복장학원 선생님이셨으며 패션디자이너시기도 했다. 그때의 엄마의 스타일화는 태교가 돼 나의 유아기 시절의 정서를 지배하지 않았나 싶다.
↑↑ 김숙정 2019년. 오랜여행-행복한정원, Happy Garden, Acrylic on canvas,116.7x91.0cm
◆ 그림은 나에게 무엇인가?
- 한마디로 '그리움'이다. 2008년 방영된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단원 김홍도가 도화서 생도들에게 그린다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혜원 신윤복은 "그린다는 것은 그리움이 아닐런지요"라고 대답했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옳거니"하며 무릎을 친 적이 있다.
늘 그리면 즐겁고 상상하면 행복한 것들을 3차원 시공간에서 현실의 2차원에서 3차원, 4차원으로 옮겨오지 못할 때는 오매불망 그리워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도 보고 싶고 그리운 것처럼.
◆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행복했을 때와 가장 힘들었을 때는
- 내가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을 때, 마음에 드는 소절, 문장들이 나오면 그것을 그림으로 옮겨보고 싶은 때가 있었다. 신파적이긴 하지만 내 그림의 제목들은 보면 시의 한 구절이거나 노래 제목이 수시로 나온다. 그림, 음악, 문학, 춤 등 예술이라 지칭하는 것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분야라서 서로가 통하는 면이 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내가 좋아하는 색채, 형태로 그려내는 것을 나 혼자만 좋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함께 공감해주며 좋아해주는 것은 내가 그림을 그리며 가장 행복한때가 아닌가 싶다. 전시장에서 내 그림 앞에 오래 머물러주며 사진을 찍는 행위조차도 감사하며 소박한 행복감을 느낀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시간의 제약을 받을 때다. 전시날짜는 다가오는데 속시원하게 진도가 안 나가거나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싶은데 맘대로 안 될 때다. 재능없음에 한탄할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의 규방공예의 화려함, 문양과 빛깔에 매료돼 모란꽃, 나비 등을 내 그림 소재에서 형과 색감 정도로만 차용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단순한 색과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땀 한 땀 수를 놓으며 꿈과 미적감흥을 담은 옛 여인네처럼, 나 역시 한 붓 한 붓 자수 기법으로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은데 늘 시간 앞에 한탄을 할 때가 적잖게 있다.
↑↑ 김숙정 2019년. 오랜여행-데이트 3, Date 3. Acrylic on canvas,53.0x45.5cm.
◆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여행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나는 그 누구도 아닌 '나'가 돼 있는 시간이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보다 학생들의 미술선생님으로, 지도하며, 내면 속의 그들의 생각을 끄집어내 표현하는 일도 즐겁고 발전하는 모습에 긍지로 삼고 있지만 아이들과 호흡하며 학생들을 끌어주는 선생님으로만 있으니 그 많은 대화와 웅성거림이 지나면 너무나 공허해진다.
절대고독을 원하며 다시 그림 속에 빠져들어 그림을 그리면 내면의 나를 찾아 다시 다지는,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감을 즐기며 행복감을 느낀다. 그것이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다.
◆ 좌우명은?
- '최선을 다하자'다. 언제나 이십대라고 생각했었는데 삼십대도 지나고 벌써 사십대 끄트머리다. 순간순간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고 지나간 시간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으니 학력고사 시대에 나는 전기 대학입시를 실패하고 후기에 희망하지 않던 학교를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확고하게 '최선을 다하자, 후회하지 않게!'가 내 좌우명이 됐다.
사람을 대하고 업무를 하거나 그림을 그릴 때에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사인을 한다. 대학시절 시험 때도 답안을 모두 작성하고도 점검하고 시험지 내라고 할 때까지 가지고 있고, 리포터 제출도 모든 자료를 모아야만 시작하는 체질이니 그림전시도 운반차량이 실으러 문 앞에 당도할 때까지 그리고 있기도 한다. 더 성실히 준비할 걸 하며 아쉬워하며 다시금 되풀이 하지 않게, 미련 곰탱이가 될지언정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
↑↑ 김숙정 2019년. 오랜여행-데이트4, Date 4. Acrylic on canvas,72.7x60.6cm
◆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 2014년 이후 아트페어만 줄곧 참여하다가 개인전을 가지니 또다시 발가벗고 무대에 올라가는 심정으로 나를 보여주는 과정에 혼신과 최선을 다하겠다. 또 미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중국, 대만, 일본 등 해외에서 그룹전도 다수 가졌으나 아직 개인전은 하지 못했다. 이십대 말 프랑스 유학시절 두어 번의 개인전 기회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나로 인한 개인사정 등으로 미루다 결국 못하고 귀국하고 말았으니 조만간 프랑스 파리에서 개인전을 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화선진국인 그들에게 내 그림을 선보이고 평가받고 좋아해주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져본다.
또 한 가지 나의 그림이야기, 사는 이야기, 사랑이야기, 에피소드 등으로 내 그림과 글이 있는 책을 내고 싶다. 좀 더 살고 나서 언젠가는. 마지막으로 죽기직전까지 눈도 제대로 보이고 손도 안 떨려 쭉 그릴 수 있는 것이 나를 향한 도전이고 꿈이고 소망이다.
◆ 김숙정 화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부모 따라 후회도 알 수 없는 대구행을 택했다. 대구대 미대 회화과 서양화를 전공한 후 경북대 일반대학원 졸업 후 프랑스 Ecole des Beaux-arts de Valenciennes에서 수학했다. 오랜 여행을 주제로 대백프라자에서 개인전을 시작으로 10회, 한·미교류전, 한·러교류전, 한·중·일 교류전, 세게여성미술제, 서울에서 열린 대한민국미술단체페스티벌 등 단체전 8회, 아트페어, 그룹전 등 당야하게 전시 활동도 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청백여류화가회, 여류100호회 등 회원으로 대구시전초대작가, 아뜰리에 학원을 운영하면서 후학들과 호흡하고 있다.
서인교 sing4302@hanmail.net
[경북신문=서인교기자] 경북신문이 영남의 예술가 회원 작가들의 근황과 작품세계를 살펴본다.
여덟 번째인 김숙정 여류화가. 김 화가는 늘 화지에,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수는 없지만 상상 속에서는 맘껏 24시간 그려낼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꿈속에서 조차도 그릴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되뇐다. 김 화가는 누구이며 그의 작품세계는 어떠한지 들여다본다.
◆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나
- 유아기 무렵, 끄적거릴 도구만 있으면 연필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면서 연필과 볼펜을 주먹 쥔 상태로 낙서를 했다. 글도 쓸 줄 모르는 시절에는 내가 불러 준대로 글을 써달라고 해서 이야기집(동화책)이 만들어지곤 했다. 이러한 행위들로 이뤄진 나의 그림은 언어였고 글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그림 잘 그리는 아이, 그림상을 독차지하는 아이로 인정받으며 칭찬과 관심 속에 나의 꿈은 자연스레 '화가'가 됐다. 그리고 자신 있게 장래희망이라는 빈칸에는 화가로 채워졌다.
언젠가 엄마에게 물었다. "나는 어쩌다 그림을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됐을까?"라고. 엄마 뱃속에 내가 있을 때 엄마는 주구장창 스타일화를 그렸었다고 했다. 엄마는 서울에서 유명한 복장학원 선생님이셨으며 패션디자이너시기도 했다. 그때의 엄마의 스타일화는 태교가 돼 나의 유아기 시절의 정서를 지배하지 않았나 싶다.
↑↑ 김숙정 2019년. 오랜여행-행복한정원, Happy Garden, Acrylic on canvas,116.7x91.0cm
◆ 그림은 나에게 무엇인가?
- 한마디로 '그리움'이다. 2008년 방영된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단원 김홍도가 도화서 생도들에게 그린다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혜원 신윤복은 "그린다는 것은 그리움이 아닐런지요"라고 대답했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옳거니"하며 무릎을 친 적이 있다.
늘 그리면 즐겁고 상상하면 행복한 것들을 3차원 시공간에서 현실의 2차원에서 3차원, 4차원으로 옮겨오지 못할 때는 오매불망 그리워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도 보고 싶고 그리운 것처럼.
◆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행복했을 때와 가장 힘들었을 때는
- 내가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을 때, 마음에 드는 소절, 문장들이 나오면 그것을 그림으로 옮겨보고 싶은 때가 있었다. 신파적이긴 하지만 내 그림의 제목들은 보면 시의 한 구절이거나 노래 제목이 수시로 나온다. 그림, 음악, 문학, 춤 등 예술이라 지칭하는 것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분야라서 서로가 통하는 면이 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내가 좋아하는 색채, 형태로 그려내는 것을 나 혼자만 좋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함께 공감해주며 좋아해주는 것은 내가 그림을 그리며 가장 행복한때가 아닌가 싶다. 전시장에서 내 그림 앞에 오래 머물러주며 사진을 찍는 행위조차도 감사하며 소박한 행복감을 느낀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시간의 제약을 받을 때다. 전시날짜는 다가오는데 속시원하게 진도가 안 나가거나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싶은데 맘대로 안 될 때다. 재능없음에 한탄할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의 규방공예의 화려함, 문양과 빛깔에 매료돼 모란꽃, 나비 등을 내 그림 소재에서 형과 색감 정도로만 차용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단순한 색과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땀 한 땀 수를 놓으며 꿈과 미적감흥을 담은 옛 여인네처럼, 나 역시 한 붓 한 붓 자수 기법으로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은데 늘 시간 앞에 한탄을 할 때가 적잖게 있다.
↑↑ 김숙정 2019년. 오랜여행-데이트 3, Date 3. Acrylic on canvas,53.0x45.5cm.
◆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여행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나는 그 누구도 아닌 '나'가 돼 있는 시간이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보다 학생들의 미술선생님으로, 지도하며, 내면 속의 그들의 생각을 끄집어내 표현하는 일도 즐겁고 발전하는 모습에 긍지로 삼고 있지만 아이들과 호흡하며 학생들을 끌어주는 선생님으로만 있으니 그 많은 대화와 웅성거림이 지나면 너무나 공허해진다.
절대고독을 원하며 다시 그림 속에 빠져들어 그림을 그리면 내면의 나를 찾아 다시 다지는,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감을 즐기며 행복감을 느낀다. 그것이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다.
◆ 좌우명은?
- '최선을 다하자'다. 언제나 이십대라고 생각했었는데 삼십대도 지나고 벌써 사십대 끄트머리다. 순간순간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고 지나간 시간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으니 학력고사 시대에 나는 전기 대학입시를 실패하고 후기에 희망하지 않던 학교를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확고하게 '최선을 다하자, 후회하지 않게!'가 내 좌우명이 됐다.
사람을 대하고 업무를 하거나 그림을 그릴 때에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사인을 한다. 대학시절 시험 때도 답안을 모두 작성하고도 점검하고 시험지 내라고 할 때까지 가지고 있고, 리포터 제출도 모든 자료를 모아야만 시작하는 체질이니 그림전시도 운반차량이 실으러 문 앞에 당도할 때까지 그리고 있기도 한다. 더 성실히 준비할 걸 하며 아쉬워하며 다시금 되풀이 하지 않게, 미련 곰탱이가 될지언정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
↑↑ 김숙정 2019년. 오랜여행-데이트4, Date 4. Acrylic on canvas,72.7x60.6cm
◆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 2014년 이후 아트페어만 줄곧 참여하다가 개인전을 가지니 또다시 발가벗고 무대에 올라가는 심정으로 나를 보여주는 과정에 혼신과 최선을 다하겠다. 또 미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중국, 대만, 일본 등 해외에서 그룹전도 다수 가졌으나 아직 개인전은 하지 못했다. 이십대 말 프랑스 유학시절 두어 번의 개인전 기회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나로 인한 개인사정 등으로 미루다 결국 못하고 귀국하고 말았으니 조만간 프랑스 파리에서 개인전을 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화선진국인 그들에게 내 그림을 선보이고 평가받고 좋아해주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져본다.
또 한 가지 나의 그림이야기, 사는 이야기, 사랑이야기, 에피소드 등으로 내 그림과 글이 있는 책을 내고 싶다. 좀 더 살고 나서 언젠가는. 마지막으로 죽기직전까지 눈도 제대로 보이고 손도 안 떨려 쭉 그릴 수 있는 것이 나를 향한 도전이고 꿈이고 소망이다.
◆ 김숙정 화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부모 따라 후회도 알 수 없는 대구행을 택했다. 대구대 미대 회화과 서양화를 전공한 후 경북대 일반대학원 졸업 후 프랑스 Ecole des Beaux-arts de Valenciennes에서 수학했다. 오랜 여행을 주제로 대백프라자에서 개인전을 시작으로 10회, 한·미교류전, 한·러교류전, 한·중·일 교류전, 세게여성미술제, 서울에서 열린 대한민국미술단체페스티벌 등 단체전 8회, 아트페어, 그룹전 등 당야하게 전시 활동도 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청백여류화가회, 여류100호회 등 회원으로 대구시전초대작가, 아뜰리에 학원을 운영하면서 후학들과 호흡하고 있다.
서인교 sing43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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