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호 수요칼럼] 외로운 것은 과연 인생의 운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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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고문·교육행정학박사 손경… 작성일19-09-24 19:28본문
↑↑ 논설고문·교육행정학박사 손경호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혼자서 세상에 나와 혼자서 떠난다. 인간의 절대 고독이 인생의 운명이다. 산다는 것 그 자체가 깊은 고독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고독이란 우리의 마음속에서 죽어버린 것들의 무덤이라 한다. 그러나 고귀한 사상을 몸에 지닌 사람은 결코 고독하지 않다고 한다.
고독은 외로움이며, 외로움은 쓸쓸함이며 아픔의 그림자다. 그래도 모든 인간은 혼자서 세상 속을 걷고 있다. 영원한 동반자가 없다. 때로는 고독이 영혼의 역량을 강하게 하므로 편안한 정신의 발전을 위해서도, 또 진실한 행복을 위해서도 절대로 필요한 것이라 한다.
어쩌면 고독은 뛰어난 정신을 가진 사람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세속에 살고, 세속의 의견을 좇아서 생활하는 것은 대단히 쉽다. 고독의 경지에 있어서 자기의 의견에 따라 생활하는 것도 용이하다.지키는 것은, 다만 위대한 위인만이 이것을 해내는 것이라 한다.
부산에서 생활하고 일본에서 일본어문학을 연구한 석학 이정미 교수는 외딴곳에 피어있는 꽃을 찾아주는 사람은 정녕 나의 임인 것처럼, 야생화화 함께 인생을 즐긴다. 이정미 교수는'고독을 즐기는 것이 행복을 찾는 것이며,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삶의 희망을 찾는 것'이라 했다.
조용한 산촌에 '암곡야생화카페'를 열고, 들꽃 핀 언덕으로 나그네를 맞는 인정스런 인사의 정감이 미려한 용모처럼 아름답다.
청록파 시인중 한분인 박두진 시인의 가슴으로 읽는 동시에 '돌아오는 길'이란 시가 많은 독자에게 측은함을 준다.
비비새가 혼자서/앉아 있었다/마을에서도/숲에서도/멀리 떨어진/논벌로 지나간/전봇줄 위에/혼자서 동그마니/앉아 있었다/한참을 걸어오다/되돌아 봐도/그때까지 혼자서/앉아 있었다
시인 박두진은 어딘가를 다녀오다가 '비비새'를 보았다. 이상했다.'마을에서도/숲에서도/멀리떨어진/논벌로 지나간/전봇줄 위에 혼자서 동그마니앉아' 있어서 왜 저렇게 혼자일까? 더구나 마을과 숲에서 멀리 떨어진 텅빈 들판에 왜 혼자 있을까 궁금해 '한참을 걸어오다/되돌아 봐도/그때까지 혼자서 앉아 있었다.
혼자 노는 외톨이 아이처럼 비비새가 퍽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여기서 이 시는 외로움이라는 말 한마디도 안썼는데도 고독감이 뭉실 피어오른다. 세 번이나 쓴 '혼자'라는 말과 '동그마니'라는 말이 그런 느낌을 풀어낸다. 비비새가 앉아 있는 곳 분위기도 외로운 감을 더하고 있다. 너를 보고 있는 나도 혼자구나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혼자다. 그래 나도 외롭다. 내가 비비새의 신세와 처지가 같구나. 어쩌면 시인이 시를 쓸 때 이런 상황이 아니었을까. 그때 그 시인에게는 어떤일 있었으며, 무슨 일이 생겼을까. 아마도 나의 입장과 같았으리라.
요즘 신조어로 혼밥이니, 혼술이니, 혼집이란 말이 있다. 모두가 혼자서라는 의미일 것이다.
외로움을 자청하여 큰 도시에 살다 시골로 귀촌한 이정미 교수는 야생화처럼 외로움을 잘 견디는 야인이 되었다. 그러나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해박한 지식과 논리적 판단과 긍정적 생활관에 너무 풍성하여 오히려 대도시에 살 때보다 더 풍요롭게 보인다. 외로움이란 고독을 아는 사람에게 정복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로움은 지식인과 친하다는 말이 있다.
청년의 고독은 감상주의지만, 철학자의 고독은 승화되고 심화되어 고고의 세계에 도달한다. 절대의 고독,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지만 고독은 상상력에 유익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운명은 용기있는 자를 사랑하며 잠들고 있는 사이에 찾아온다.
논설고문·교육행정학박사 손경… kua348@naver.com
고독은 외로움이며, 외로움은 쓸쓸함이며 아픔의 그림자다. 그래도 모든 인간은 혼자서 세상 속을 걷고 있다. 영원한 동반자가 없다. 때로는 고독이 영혼의 역량을 강하게 하므로 편안한 정신의 발전을 위해서도, 또 진실한 행복을 위해서도 절대로 필요한 것이라 한다.
어쩌면 고독은 뛰어난 정신을 가진 사람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세속에 살고, 세속의 의견을 좇아서 생활하는 것은 대단히 쉽다. 고독의 경지에 있어서 자기의 의견에 따라 생활하는 것도 용이하다.지키는 것은, 다만 위대한 위인만이 이것을 해내는 것이라 한다.
부산에서 생활하고 일본에서 일본어문학을 연구한 석학 이정미 교수는 외딴곳에 피어있는 꽃을 찾아주는 사람은 정녕 나의 임인 것처럼, 야생화화 함께 인생을 즐긴다. 이정미 교수는'고독을 즐기는 것이 행복을 찾는 것이며,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삶의 희망을 찾는 것'이라 했다.
조용한 산촌에 '암곡야생화카페'를 열고, 들꽃 핀 언덕으로 나그네를 맞는 인정스런 인사의 정감이 미려한 용모처럼 아름답다.
청록파 시인중 한분인 박두진 시인의 가슴으로 읽는 동시에 '돌아오는 길'이란 시가 많은 독자에게 측은함을 준다.
비비새가 혼자서/앉아 있었다/마을에서도/숲에서도/멀리 떨어진/논벌로 지나간/전봇줄 위에/혼자서 동그마니/앉아 있었다/한참을 걸어오다/되돌아 봐도/그때까지 혼자서/앉아 있었다
시인 박두진은 어딘가를 다녀오다가 '비비새'를 보았다. 이상했다.'마을에서도/숲에서도/멀리떨어진/논벌로 지나간/전봇줄 위에 혼자서 동그마니앉아' 있어서 왜 저렇게 혼자일까? 더구나 마을과 숲에서 멀리 떨어진 텅빈 들판에 왜 혼자 있을까 궁금해 '한참을 걸어오다/되돌아 봐도/그때까지 혼자서 앉아 있었다.
혼자 노는 외톨이 아이처럼 비비새가 퍽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여기서 이 시는 외로움이라는 말 한마디도 안썼는데도 고독감이 뭉실 피어오른다. 세 번이나 쓴 '혼자'라는 말과 '동그마니'라는 말이 그런 느낌을 풀어낸다. 비비새가 앉아 있는 곳 분위기도 외로운 감을 더하고 있다. 너를 보고 있는 나도 혼자구나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혼자다. 그래 나도 외롭다. 내가 비비새의 신세와 처지가 같구나. 어쩌면 시인이 시를 쓸 때 이런 상황이 아니었을까. 그때 그 시인에게는 어떤일 있었으며, 무슨 일이 생겼을까. 아마도 나의 입장과 같았으리라.
요즘 신조어로 혼밥이니, 혼술이니, 혼집이란 말이 있다. 모두가 혼자서라는 의미일 것이다.
외로움을 자청하여 큰 도시에 살다 시골로 귀촌한 이정미 교수는 야생화처럼 외로움을 잘 견디는 야인이 되었다. 그러나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해박한 지식과 논리적 판단과 긍정적 생활관에 너무 풍성하여 오히려 대도시에 살 때보다 더 풍요롭게 보인다. 외로움이란 고독을 아는 사람에게 정복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로움은 지식인과 친하다는 말이 있다.
청년의 고독은 감상주의지만, 철학자의 고독은 승화되고 심화되어 고고의 세계에 도달한다. 절대의 고독,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지만 고독은 상상력에 유익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운명은 용기있는 자를 사랑하며 잠들고 있는 사이에 찾아온다.
논설고문·교육행정학박사 손경…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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