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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관 기고] 산방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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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탈영상복원전문가 고영관 작성일19-09-0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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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탈영상복원전문가 고영관"스님은 왜 출가하셨습니까?"
"생사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 했지요."
"해결이 되셨는지요?"
"해결은커녕 의문이 더 크진 것 같습니다만."
"답이 없는 것입니까?"
"글쎄, 답이 없는 것인지, 있는데 못 찾는 것인지, 그걸 알 수가 없네요."
"있는데 못 찾는 거야 더 열심히 찾으면 되겠지만, 없는 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어리석지 않습니까?"
"없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럼 있다는 말씀인지요?"
"있다고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다."
"있지도 없지도 않다면, 답을 찾은 사람에게는 있는 것이고, 답을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겠군요."
"차나 한 잔 하시지요."

  꼭 스님네들은 이런 순간에 차를 권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우문현답인지? 우문우답인지? 현문우답인지? 현문현답인지? 그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만, 오래전 어느 산방에서 어떤 스님과 주고받은 대화이다.

  내가 알기로, 적어도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생멸이 존재하지 않는다. 질량 불변의 법칙과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그것인데 즉, 모든 물질이 형태는 변화하지만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은 없다는 얘기다. 물질의 기본 구성 요소인 '양자(proton)'조차도 붕괴한다는 것이 밝혀진 이상, 만유무상(萬有無相)을 설파한 불법은 진리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화하지만, 증감이 없으니 생멸이라 말 할 것이 있겠는가?

  장마가 시작된 것일까? 아침부터 종일 굿은 비가 내리고 있다. 그런데 온 대지를 적셔주고 있는 저 비는 누가 의도한 것이며 또 어디서 생겨난 것인가? 비가 되어 마당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고 우리는 그것을 하늘에서 내리는 '비'라 말 하지만, 결국 지상 어디에선가 태양열에 의해 증발한 수증기가 하늘을 배회하다가 어떤 인연에 의해 응고되면서 지상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비가 되어 지상으로 돌아온 물은 또 다른 인연을 만나 하늘로 올라갈 것이며, 그 순환은 지구가 만들어 지면서 시작되어 지구가 끝나는 날까지 이어질 것들이다.

  우주를 배회하던 원소들이 묘한 인연에 의해 나(我)라는 생명체의 형상을 만들고는 있지만, 결국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며, 그 후 또 다른 인연을 만나면 다음엔 또 어떤 형상을 하게 될는지 알 수가 없다. 그처럼 나고 죽음이란 사람이 가진 주관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 기실 존재의 실상은 생멸하지 않는다는 말이 옳다.

  따라서 '생사의 문제'는 사람이 일으킨 망상에 불과하며, 삶에 대한 집착이 만드는 망상이다. 그러나  집착을 끊으면 망상은 자연히 소멸하여 마치 해가 지면 사라지는 내 그림자와 같을 것이다. 해가 정중시(正中時)에 있을 때는 발아래 밟고 있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지 못하더니, 해가 기울어짐에 따라 점점 길어지는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집착을 키우게 되는 것이 바로 생사 고뇌의 원인이 아닌지 모르겠다.
 
  "스님, 녹차향이 참으로 그윽합니다만, 이 향은 어디서 온 것 일까요?"
"허어, 또 시비하시려고?"

  사실 내가 대접받는 입장에서 녹차향을 예찬(禮讚)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본래 생수 외에 곡차라면 또 몰라도, 어떤 종류의 비주류(非酒類) 음료도 딱히 즐기는 것이 없는데, 나의 감성이 무딘 탓이겠지만, 사실 녹차의 그 씁쓰레한 맛은 대부분의 식물 엽록소에서 우려지는 맛이라 여겨지고, 그 그윽한 향이라는 것도 어릴 적 소여물 삶을 때의 냄새와 흡사하게 닮아 있다는 것이 내 기억이다.

  식물이 녹색을 띤 것은 광합성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요, 식물의 푸른 빛깔과 냄새가 좋게 느껴지는 것은, 원래 숲에 사는 동물이었던 사람의 DNA에 각인된 향수(鄕愁) 때문으로 추측된다. 녹차향이 비록 대를 이어 우리 후각에 길들여진 냄새라 할지라도, 그 좋은 냄새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지 않는 한 생사의 문제에서 벗어남 또한 요원하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 나는 들고 있던 찻잔을 금세 비우고 스님에게 또 녹차 리필을 요구한다. 녹차향이 정말 좋아져서 그런지, 녹차향과 좋아지려고 그런건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는 문제가 아닌 문제의 답을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왜 사느냐고 묻지말고 그냥 사시지요 들"
디지탈영상복원전문가 고영관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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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