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지 문화칼럼] 기아와 역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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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홍영지 작성일21-05-06 19:25본문
↑↑ 수필가 홍영지봄이 되면서 밥상에 나물들이 번갈아 오른다. 쑥으로 시작하여 냉이, 달래, 원추리, 돌나물, 방풍나물, 엄나물, 참나물, 취나물, 오가피순에 이름도 재미있는 부지깽이나물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나물을 먹다보면 쌉사레한 맛과 함께 옛사람들의 배고픔을 느끼게 된다.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모를 것이다. 겨울이 지나 보리가 나기 전까지 양식은 떨어지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들과 산을 뒤져 초근목피를 캐러 다니던 옛사람들의 고달팠던 삶을. 그나마도 먹을 게 없게 되면 마름에게 애걸하여 지주에게 장리로 곡식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가을에 추수하면 빌린 곡식의 반을 더하여 갚아야 했다. 그 폭리를 장리라 한다. 소작인들은 그렇게 지주에게 착취 당하고 이듬해 다시 그런 악순환이 되풀이 되었다. 흉년이라도 드는 해는 굶어 죽는 사람도 나왔다. 먹고 사는 것만도 그렇게 힘들었다.
티브이에 굶주려 피골이 상접한 아프리카인들의 모습이 수시로 방영된다. 뼈가 앙상하게 들어난 채 죽어가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 가련하기 그지없다.
그런 모습으로 굶어 죽는 사람이 매일 만 명에서 삼만 명에 이른다는 유엔 세계 식량기구의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이 비참한 아사餓死를 두고 인간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자연의 한 기능이라고 말한 유럽 한 학자가 있다.
참 비정하고 잔혹한 학설이지만 그 설을 긍정하기도 비난하기도 그리 간단치 않다. 생명체들의 균형을 맞추는 자연의 법칙이란 잔인의 원리가 바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질병 역시 그 테두리 안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전 세계가 covid19로 정식 명칭이 붙은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과 혼란에 빠져 있다. 저녁 뉴스를 들으니 죽은 사람이 삼백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죽을지 그리고 언제쯤 이 상황이 종식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covid19는 14C 중반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에 비하면 아주 약과다. 흑사병이라고도 불리는 이 병에 걸려 죽은 사람은 유럽 전인구의 1/5에서 많게는 1/2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숫자상으로는 이천만이 넘었다. 처리하지 못한 시체는 거리에 방치되고 그 것이 더 병세를 확산시켰다고 한다.
페스트의 진원지는 중국의 북부지방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으로 확산 되었다는 설이 있고 몽골군의 유럽 침공 때 이미 감염된 원정대 병사들에 의하여 유입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페스트가 유럽에서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 시대에 이미 페스트가 유행하여 당시 아테네 시민의 1/4이 죽었고 6C 경에는 아프리카의 북부지방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로마제국으로 흘러들어 삼십여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당시의 인구수를 생각한다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알다시피 알베르 까뮈는 '페스트'라는 소설을 썼다. 그 책에는 죽음이 횡행하는 극한의 상황에 대응하는 세 가지 유형의 인간군들이 등장한다. 자기만 걸리지 않으면 남이야 어쨌든 시니컬한 모습으로 수수방관하는 유형이 있고 의사들과 함께 병마에 맞서 싸우는 유형이 있다.
그리고 신이 내린 형벌이라 하여 신앙에 의지하려는 종교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병마에서 자신을 지켜주기를 기도하는 것은 종교인의 일반적인 모습이고 수긍도 된다.
그러나 페스트를 악령이 깃든 자들이 퍼트리는 것이라 하여 마녀사냥처럼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 고문하고 처형하기도 한 사제와 광신자가 등장한다. 그 표적이 유대인들이었다.
바이러스는 시대를 막론하고 수시로 나타나 인간들을 위협한다. 이십세기에도 아프리카 남부지방에서 시작된 에볼라바이러스가 나타나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에볼라는 치사율이 무려 75%에서 90%에 달했다.
그 외에도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후천성 면역결핍증을 불러오는 에이즈, 그리고 메르스와 사스도 잊을 수 없다. 의술이 발달하면 바이러스도 변이를 거듭하고 변종을 만들어 살아남으려 한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다. 강하고 적응하는 자는 살아남고 약하고 노쇠한 자는 도태된다. 모두 힘을 내야 한다. 강해지자. 그리하여 코로나를 이겨내자.
수필가 홍영지 kua348@naver.com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모를 것이다. 겨울이 지나 보리가 나기 전까지 양식은 떨어지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들과 산을 뒤져 초근목피를 캐러 다니던 옛사람들의 고달팠던 삶을. 그나마도 먹을 게 없게 되면 마름에게 애걸하여 지주에게 장리로 곡식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가을에 추수하면 빌린 곡식의 반을 더하여 갚아야 했다. 그 폭리를 장리라 한다. 소작인들은 그렇게 지주에게 착취 당하고 이듬해 다시 그런 악순환이 되풀이 되었다. 흉년이라도 드는 해는 굶어 죽는 사람도 나왔다. 먹고 사는 것만도 그렇게 힘들었다.
티브이에 굶주려 피골이 상접한 아프리카인들의 모습이 수시로 방영된다. 뼈가 앙상하게 들어난 채 죽어가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 가련하기 그지없다.
그런 모습으로 굶어 죽는 사람이 매일 만 명에서 삼만 명에 이른다는 유엔 세계 식량기구의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이 비참한 아사餓死를 두고 인간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자연의 한 기능이라고 말한 유럽 한 학자가 있다.
참 비정하고 잔혹한 학설이지만 그 설을 긍정하기도 비난하기도 그리 간단치 않다. 생명체들의 균형을 맞추는 자연의 법칙이란 잔인의 원리가 바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질병 역시 그 테두리 안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전 세계가 covid19로 정식 명칭이 붙은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과 혼란에 빠져 있다. 저녁 뉴스를 들으니 죽은 사람이 삼백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죽을지 그리고 언제쯤 이 상황이 종식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covid19는 14C 중반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에 비하면 아주 약과다. 흑사병이라고도 불리는 이 병에 걸려 죽은 사람은 유럽 전인구의 1/5에서 많게는 1/2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숫자상으로는 이천만이 넘었다. 처리하지 못한 시체는 거리에 방치되고 그 것이 더 병세를 확산시켰다고 한다.
페스트의 진원지는 중국의 북부지방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으로 확산 되었다는 설이 있고 몽골군의 유럽 침공 때 이미 감염된 원정대 병사들에 의하여 유입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페스트가 유럽에서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 시대에 이미 페스트가 유행하여 당시 아테네 시민의 1/4이 죽었고 6C 경에는 아프리카의 북부지방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로마제국으로 흘러들어 삼십여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당시의 인구수를 생각한다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알다시피 알베르 까뮈는 '페스트'라는 소설을 썼다. 그 책에는 죽음이 횡행하는 극한의 상황에 대응하는 세 가지 유형의 인간군들이 등장한다. 자기만 걸리지 않으면 남이야 어쨌든 시니컬한 모습으로 수수방관하는 유형이 있고 의사들과 함께 병마에 맞서 싸우는 유형이 있다.
그리고 신이 내린 형벌이라 하여 신앙에 의지하려는 종교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병마에서 자신을 지켜주기를 기도하는 것은 종교인의 일반적인 모습이고 수긍도 된다.
그러나 페스트를 악령이 깃든 자들이 퍼트리는 것이라 하여 마녀사냥처럼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 고문하고 처형하기도 한 사제와 광신자가 등장한다. 그 표적이 유대인들이었다.
바이러스는 시대를 막론하고 수시로 나타나 인간들을 위협한다. 이십세기에도 아프리카 남부지방에서 시작된 에볼라바이러스가 나타나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에볼라는 치사율이 무려 75%에서 90%에 달했다.
그 외에도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후천성 면역결핍증을 불러오는 에이즈, 그리고 메르스와 사스도 잊을 수 없다. 의술이 발달하면 바이러스도 변이를 거듭하고 변종을 만들어 살아남으려 한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다. 강하고 적응하는 자는 살아남고 약하고 노쇠한 자는 도태된다. 모두 힘을 내야 한다. 강해지자. 그리하여 코로나를 이겨내자.
수필가 홍영지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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