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관 특별기고] ‘제야의 종은 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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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전문가 고영관 작성일20-12-30 20:07본문
↑↑ IT전문가 고영관쥐(鼠)때보다 더 소란스러운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시작된 경자년(庚子年) 한 해가 저물고, 드디어 우직한 소(牛)의 해 신축년(辛丑年) 새해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오늘 아침 동해에서 떠오른 태양이나 내일 아침 동해에서 솟아오를 태양이 다르지 않은데, 굳이 사람들은 새해 아침 해를 보기 위해 바닷가로 바닷가로 몰려가 장사진을 친다.
쥐의 해 아침 해가 뜨기 직전, 우리 행성의 어느 한 지역에서 갑자기 모습을 들어 낸 ‘코로나19’라는 이름의 발(足)도 없고 날개도 없는 미생물체가 단 1년 사이에 전 지구를 점령하고, 우리 인류에게 제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많은 사상자를 속출시키며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새해에는 과연 우리가 그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적들이 우리를 무차별 공격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그들에게 대항할 변변한 무기 하나 없는 게 현실이 아닌가?
백신을 먼저 개발했다는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위험 군(群)에 우선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워낙 급하게 개발된 백신이라 아직은 아무도 그 안전성을 장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코로나19는 또 어떤 전략으로 급조된 기존 백신을 무력화 시킬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니까 백신(vaccine)이란 어차피 적을 공격하여 죽일 수 있는 공격무기는 아니며, 단지 적의 공격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해줄 방패 정도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인데, 날카로운 창을 막을 방패가 개발되면 다시 그 방패를 뚫을 창이 나타나게 마련임으로, 현재로써는 불안정하기 짝인 없는 백신에만 모든 것을 의지하려 할 것이 아니라, 적을 바로 공격하여 죽일 수 있는 치료제 개발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라는 것이 의료지식에 문외한 나의 단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이, 전쟁에서 적을 물리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일사불란(一絲不亂)한 지휘 명령체계에 따른 집단 대응이 반드시 필요할 것인데, 이 엄중한 전시(戰時)에조차 개인의 자유만을 앞세우며 일탈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공동체의 안녕을 크게 위협하는 이적행위자와 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일 무서운 적을 앞에 둔 상황에서 항명하며 사령관의 지휘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불량 언론 등을 이용한 혹세무민(惑世誣民), 자신만의 이익을 쫓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내부의 적(敵)일 터이다.
아무리 사람이 망각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전시도 아닌 평시에 시간대에 따라 통금은 물론, 복장이나 두발 형태까지 제한받으며, 표현의 자유 따위야 사치라 할지라도 사석(私席)에서 말 한 마디 실수로도 정치범이 될 수 있고, 충성 경쟁, 출세 경쟁에 혈안이 된 무도한 무리들에 의해, 없는 죄도 고문으로 자백하게 하던 그 엄혹한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모른다는 말인가?
언론이든 개인이든 입 달린 사람이라면, 자기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고, 정치인이든 대통령이든 무차별 비판의 대상이 되며, 흉악범에게조차 인권을 보장하는 이 나라가 정말 독재국가일까?
독재 권력에 아부한 대가로 공공연히 특권을 인정받던 그 때 그 시절을 향유해온 특정 기득권에게는 그들만의 그 특권을 쉬 용인하지 않으려는 현재가 불만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현재의 우리 대한민국을 독재국가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강요할 권리가 아무에게도 없듯이 더구나 소수만의 행복을 위해 다수가 양보해야 하는 논리의 근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불공정한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 하는가? 불의와 결탁한 소수만의 천국이던, 소위 ‘한국적 민주주의’라 칭해지던 그 때 그 시절을 아직도 잊지 못해서인가?
코로나19와의 전쟁은 물론, 참으로 불의한 무리들과의 내전이 종식되는 그날까지 제야(除夜)의 종소리는 울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IT전문가 고영관 kua348@naver.com
오늘 아침 동해에서 떠오른 태양이나 내일 아침 동해에서 솟아오를 태양이 다르지 않은데, 굳이 사람들은 새해 아침 해를 보기 위해 바닷가로 바닷가로 몰려가 장사진을 친다.
쥐의 해 아침 해가 뜨기 직전, 우리 행성의 어느 한 지역에서 갑자기 모습을 들어 낸 ‘코로나19’라는 이름의 발(足)도 없고 날개도 없는 미생물체가 단 1년 사이에 전 지구를 점령하고, 우리 인류에게 제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많은 사상자를 속출시키며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새해에는 과연 우리가 그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적들이 우리를 무차별 공격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그들에게 대항할 변변한 무기 하나 없는 게 현실이 아닌가?
백신을 먼저 개발했다는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위험 군(群)에 우선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워낙 급하게 개발된 백신이라 아직은 아무도 그 안전성을 장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코로나19는 또 어떤 전략으로 급조된 기존 백신을 무력화 시킬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니까 백신(vaccine)이란 어차피 적을 공격하여 죽일 수 있는 공격무기는 아니며, 단지 적의 공격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해줄 방패 정도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인데, 날카로운 창을 막을 방패가 개발되면 다시 그 방패를 뚫을 창이 나타나게 마련임으로, 현재로써는 불안정하기 짝인 없는 백신에만 모든 것을 의지하려 할 것이 아니라, 적을 바로 공격하여 죽일 수 있는 치료제 개발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라는 것이 의료지식에 문외한 나의 단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이, 전쟁에서 적을 물리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일사불란(一絲不亂)한 지휘 명령체계에 따른 집단 대응이 반드시 필요할 것인데, 이 엄중한 전시(戰時)에조차 개인의 자유만을 앞세우며 일탈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공동체의 안녕을 크게 위협하는 이적행위자와 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일 무서운 적을 앞에 둔 상황에서 항명하며 사령관의 지휘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불량 언론 등을 이용한 혹세무민(惑世誣民), 자신만의 이익을 쫓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내부의 적(敵)일 터이다.
아무리 사람이 망각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전시도 아닌 평시에 시간대에 따라 통금은 물론, 복장이나 두발 형태까지 제한받으며, 표현의 자유 따위야 사치라 할지라도 사석(私席)에서 말 한 마디 실수로도 정치범이 될 수 있고, 충성 경쟁, 출세 경쟁에 혈안이 된 무도한 무리들에 의해, 없는 죄도 고문으로 자백하게 하던 그 엄혹한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모른다는 말인가?
언론이든 개인이든 입 달린 사람이라면, 자기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고, 정치인이든 대통령이든 무차별 비판의 대상이 되며, 흉악범에게조차 인권을 보장하는 이 나라가 정말 독재국가일까?
독재 권력에 아부한 대가로 공공연히 특권을 인정받던 그 때 그 시절을 향유해온 특정 기득권에게는 그들만의 그 특권을 쉬 용인하지 않으려는 현재가 불만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현재의 우리 대한민국을 독재국가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강요할 권리가 아무에게도 없듯이 더구나 소수만의 행복을 위해 다수가 양보해야 하는 논리의 근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불공정한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 하는가? 불의와 결탁한 소수만의 천국이던, 소위 ‘한국적 민주주의’라 칭해지던 그 때 그 시절을 아직도 잊지 못해서인가?
코로나19와의 전쟁은 물론, 참으로 불의한 무리들과의 내전이 종식되는 그날까지 제야(除夜)의 종소리는 울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IT전문가 고영관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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