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눈물의 은퇴` 김태균 ˝우승 못했기에 점수는 30~4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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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진 작성일20-10-22 17:09본문
↑↑ 은퇴를 선언한 김태균(한화 이글스)이 22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주장 이용규에게 꽃다발을 받고 있다. 2020.10.22
[경북신문=황수진기자] 20년 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김태균(38·한화 이글스)이 눈물을 쏟아내며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김태균은 22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한화 이글스는 자존심이자 자부심이었다"면서 우승을 하지 못한 한을 드러냈다.
정민철 단장과 최원호 감독대행, 주장 이용규의 꽃다발 전달식이 끝난 후 기자회견을 위해 자리에 앉은 김태균은 눈물을 잔뜩 쏟아냈다. 눈물을 닦느라 한동안 말도 꺼내지 못했다.
한동안 눈물을 흘린 김태균은 "항상 저희 선수들에게 도전정신을 일깨워주신 구단주 한화 김승연 회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한 뒤 역대 감독과 코치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희생하시고, 저만 바라보고 사셨던 부모님과 집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생했다"며 가족들에게 감사 인사를 할 때에는 다시 한 번 눈물을 보였다.
김태균은 "충청도 천안 출신이라 항상 한화 야구를 보면서 운동을 열심히 해왔다. 한화에 입단해서 잘하고 싶은 목표와 꿈을 가지고 자라왔다"며 "그 꿈을 이루게 된 팀이 한화고, 한화 선수여서 너무 행복했다. 한화 이글스는 저의 자존심이고 자부심이었다. 한화 유니폼을 입고 뛴 것은 저에게 큰 영광이었다"고 되돌아봤다.
이어 "이제 이글스 유니폼을 벗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한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김태균은 우승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짙은 아쉬움을 드러내며 후배들이 한을 풀어주길 바랐다. 김태균이 은퇴를 결심한 것도 후배들에게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서였다.
김태균은 "언제나 시즌 시작 전에 팬들에게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 팬들과 함께 우승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말하면서 희망을 드렸다"며 "그런데 그 약속을 한 번도 지키지 못해 팬들에게 죄송하다. 남은 인생에서도 평생 한으로 남을 것 같다. 후배들이 나의 한을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는 "우리 팀에는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 우리 팀도 강팀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며 "그런 선수들을 보면서 항상 좋은 기회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후배들이 제가 이루지 못한, 우승이라는 꿈을 이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2001년 한화에서 프로에 데뷔한 김태균은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뛴 2010~2011년을 제외하고 18시즌을 한화에서 뛰었다. 통산 성적은 타율 0.320 311홈런 1358타점 1024득점에 출루율 0.421, 장타율 0.516이다.
한화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 시즌 제한적으로 관중 입장이 진행 중인 것을 고려해 김태균의 은퇴식을 내년에 진행하기로 했다.
김태균은 한화의 스페셜 어시스턴트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단장 보좌 어드바이저 역할이다.
◇다음은 김태균과의 일문일답.
-우승하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했는데, 2006년 한국시리즈를 떠올려보면 어떤가.
"그 때에는 저도 어렸다. 워낙 좋은 선배들이 많이 이끌어주셨다. 당시에 한국시리즈를 경험하면서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 우리 팀이 강팀이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또 그런 기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우승이 이렇게 힘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후배들에게 항상 그런 기회가 쉽게 오지 않기 때문에 기회가 올 때 최선을 다해 잡으라고 말했던 것 같다."
-유난히 별명이 많다. 팬들에게 야속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나.
"야속하다기보다 돌이켜보면 팬들이 많은 별명을 지어주시면서 재미있어 하시더라. 안좋은 별명도 있었지만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별명을 접하고 보면서 웃은 적도 있다. 야속하다기보다 팬들의 사랑이고 관심이라 생각한다. 이제 별명을 들을 수 없다."
-기억에 남는 별명이 있나.
"너무 많다. 어린 시절에는 김질주가 나와 이미지가 다른 별명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덩치도 크고 느릿한 이미지가 있어서 김질주라는 별명이 마음에 들었다. 팀의 중심이 되면서 한화의 자존심이라는 별명이 마음에 들었다."
-은퇴를 결심한 계기는.
"1년 계약을 하면서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납득하지 못하는 성적이 나온다면 결단을 내리고 싶었다. 한화라는 팀에 나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고 싶었다. 20살 젊을 때보다 웨이트트레이닝 등 운동량을 많이 가져갔다. 당시에는 이런 결정을 했을 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어느 해보다 열심히 준비헀다. 하지만 시즌 개막하고 얼마되지 않아 2군으로 내려갔을 때 마음 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1군에 다시 온 이후에 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열심히 헀다. 8월에 2군에 가면서 마음을 굳히게 됐다. 서산에서 젊고 유망한 선수들을 보면서 결심하게 됐다."
-은퇴 결심한 이후에도 서산에서 훈련을 했는데.
"2군 서산구장에서 젊은 선수들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얼마나 힘들게 준비해서 1군 무대에 서는지 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 선수들이 워낙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상태에서 선수들에게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평상시와 다르지 않게 행동했다. 이것저것 후배들이 궁금해하는 점에 대해 말해주려고 했다. 내가 결정을 해야하니 복잡하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
-타석에 들어설 때 어떤 생각을 하고 들어섰나.
"어린 시절부터 아웃되는 것을 싫어했다. 아웃되는 것도 싫었고, 삼진 당하는 것도 싫었다. 아웃이 되도 배트에 공이 안맞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항상 타율도 좋고, 정확성도 좋고, 홈런도 잘 치고, 안타도 잘 치고, 투수들이 상대하기 꺼려하는 타자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준비했다. 프로에 와서도 거기에 포커스를 맞춰서 준비했다. 홈런이 많지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타자의 기준에 맞춰서 해왔다."
-포스트 김태균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마음 속으로 있지만 후배들이 다 잘했으면 좋겠다. 다 포스트 김태균이 돼서 한화가 최강팀이 됐으면 좋겠다. 굳이 한 명을 지목하지는 않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록은.
"기록을 의식하면서 뛰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크게 없다. 그래도 300홈런, 2000안타, 1000타점 기록을 만들었다는 것은 뿌듯하다. 주목받은 연속 출루 기록도 기억에 남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안타는.
"안타는 아니고 홈런이다. 데뷔 첫 안타였던 홈런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아버님이 TV로 보시다가 우셨다."
-주위의 큰 기대를 안고 뛰었는데.
"주위에는 제가 그냥 야구 잘하는 것처럼 비춰지실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누구에게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력을 많이 했다. 겉모습과 다르게 성격도 예민하다. 다음날 경기도 남들보다 더 많이 준비했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성격이다. 20년 선수 생활에서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고 노력했다. 주위의 큰 기대에는 보답하지 못한 것 같다."
-마지막 경기가 8월15일 삼성전이 됐는데.
"모든 선수는 처음도 중요하지만 마지막도 중요하다. 팀도 좋은 성적에 본인도 좋은 성적을 가지고 마무리를 하는 상황을 꿈꾼다. 이승엽 선배나 박용택 선배 같은 좋은 마무리를 꿈꾸고 기대했다. 하지만 상황이 있는 것이다. 선배들은 워낙 뛰어난 분들이라 가능한 것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을 했다. 팀 상황에도 내가 빨리 결정해주는 것이 모든 일에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은퇴 후 계획은. 단장 보좌 어드바이저 역할은 어떨 것 같나.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야구를 하느라 못해본 것이 많다.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한화가 더 좋은 팀으로 갈 수 있도록 배우고 싶다. 좋은 선배들이 많으니 뭘 배우고 준비해야하는지 생각하면서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 구단이 팀을 이끌어가는데 조언하고 조율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누가 되지 않고 좋은 결과로 갈 수 있도록 준비를 잘 하겠다. 공부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하겠다."
-자신에게 한 마디 한다면.
"초등학교 2학년 아버님이 시켜서 야구를 했다. 그때는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어서 야구 안하고 집에 가는 등 방황했다. 그 때 감독님과 아버님이 잡아주셨다. 중학교 올라가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이 길로 가야겠구나 생각했다. 마음을 바꿔먹고 부모님 속을 썩이지 않았다. 이후 야구 생각을 많이 했고, 목표롤 갖고 했다.
거의 야구만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부모님이 외진 곳에 연습장을 지어주셔서 연습을 항상 했다. 아버지가 집에 온 후 스윙 1000번을 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자게 했다. 정말 야구만 했다. 이제 이글스 유니폼을 벗지만 기대되는 제2의 인생을 만들도록 하겠다."
-1982년생 선수들이 뛰고 있는데 은퇴하게 됐다. 하고 싶은 말은.
"나 때문에 친구들에게 불편하거나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 미안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친구들은 야구 잘 해서 내가 하지 못한 멋진 마무리를 했으면 좋겠다. 대표팀 등에서 서로 의지했고, 좋은 추억이 많다. 추억을 안고 떠날 것이다. 선수들이 더 열심히 잘해서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선수 인생에 점수를 준다면.
"30~40점 밖에 안되지 않나. 나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점수를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굳이 매기자면 팀의 주축 선수로서 우승할 수 있는 팀으로 만들지 못한 점 때문에 많은 점수를 줄 수 없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지도자가 있나.
"너무 많다. 이정훈 2군 감독님은 나를 동생처럼 아껴주셨다. 김인식 감독님과 함께 뛰면서 야구가 많이 늘었다. 개인 훈련의 중요성도 깨달았던 시기였다. 그러면서 한 단계 선수로서 올라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김성근 감독님은 안주하지 않고 한 꺼풀 벗도록 지도해주셨다."
-은퇴 기자회견을 시작하며 울었는데.
"마음을 결정할 때도 덤덤했다. 아무렇지 않았다. 열심히 했기 때문에 후회가 남는 것도 없었다. 감정이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에 와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현실로 다가오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런 큰 관심을 받을 일이 앞으로 없을 것이라서 북받쳤다."
-영구결번에 대한 생각은.
"구단 관계자가 결정하시는 것이다. 결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나보다 훌륭한 선수도 많고, 뛰어난 선수가 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것이다. 나를 돌아보면서 생각하고 구단과 상의해야할 것 같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어떤 식으로든 기억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저의 강점인 김별명이라는 게 있으니 기억에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전에는 크게 그런걸 못 느꼈는데, 지금은 팬들에게 잊혀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팀이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데.
"결정권이 있는 보직은 아니다. 사장님, 단장님, 구단 관게자들이 좋은 결정을 하고, 발전을 위해 노력하실 것이다. 나는 이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니 선수들의 생각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구단에서 뭔가 추진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 제대로 하기 위해 준비와 공부를 해야한다. 열심히 준비하겠다.
-마지막 한 타석을 보고싶어하는 팬들이 있는데.
"은퇴경기를 안 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한 타석이 저한테 소중하지만 다른 선수에게는 더 간절할 수 있다. 가는 길에 선수의 소중한 기회를 뺏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많은 고민을 해서 결정했다. 번복하고 싶지는 않다."
황수진 scupark@hanmail.net
[경북신문=황수진기자] 20년 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김태균(38·한화 이글스)이 눈물을 쏟아내며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김태균은 22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한화 이글스는 자존심이자 자부심이었다"면서 우승을 하지 못한 한을 드러냈다.
정민철 단장과 최원호 감독대행, 주장 이용규의 꽃다발 전달식이 끝난 후 기자회견을 위해 자리에 앉은 김태균은 눈물을 잔뜩 쏟아냈다. 눈물을 닦느라 한동안 말도 꺼내지 못했다.
한동안 눈물을 흘린 김태균은 "항상 저희 선수들에게 도전정신을 일깨워주신 구단주 한화 김승연 회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한 뒤 역대 감독과 코치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희생하시고, 저만 바라보고 사셨던 부모님과 집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생했다"며 가족들에게 감사 인사를 할 때에는 다시 한 번 눈물을 보였다.
김태균은 "충청도 천안 출신이라 항상 한화 야구를 보면서 운동을 열심히 해왔다. 한화에 입단해서 잘하고 싶은 목표와 꿈을 가지고 자라왔다"며 "그 꿈을 이루게 된 팀이 한화고, 한화 선수여서 너무 행복했다. 한화 이글스는 저의 자존심이고 자부심이었다. 한화 유니폼을 입고 뛴 것은 저에게 큰 영광이었다"고 되돌아봤다.
이어 "이제 이글스 유니폼을 벗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한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김태균은 우승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짙은 아쉬움을 드러내며 후배들이 한을 풀어주길 바랐다. 김태균이 은퇴를 결심한 것도 후배들에게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서였다.
김태균은 "언제나 시즌 시작 전에 팬들에게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 팬들과 함께 우승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말하면서 희망을 드렸다"며 "그런데 그 약속을 한 번도 지키지 못해 팬들에게 죄송하다. 남은 인생에서도 평생 한으로 남을 것 같다. 후배들이 나의 한을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는 "우리 팀에는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 우리 팀도 강팀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며 "그런 선수들을 보면서 항상 좋은 기회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후배들이 제가 이루지 못한, 우승이라는 꿈을 이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2001년 한화에서 프로에 데뷔한 김태균은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뛴 2010~2011년을 제외하고 18시즌을 한화에서 뛰었다. 통산 성적은 타율 0.320 311홈런 1358타점 1024득점에 출루율 0.421, 장타율 0.516이다.
한화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 시즌 제한적으로 관중 입장이 진행 중인 것을 고려해 김태균의 은퇴식을 내년에 진행하기로 했다.
김태균은 한화의 스페셜 어시스턴트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단장 보좌 어드바이저 역할이다.
◇다음은 김태균과의 일문일답.
-우승하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했는데, 2006년 한국시리즈를 떠올려보면 어떤가.
"그 때에는 저도 어렸다. 워낙 좋은 선배들이 많이 이끌어주셨다. 당시에 한국시리즈를 경험하면서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 우리 팀이 강팀이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또 그런 기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우승이 이렇게 힘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후배들에게 항상 그런 기회가 쉽게 오지 않기 때문에 기회가 올 때 최선을 다해 잡으라고 말했던 것 같다."
-유난히 별명이 많다. 팬들에게 야속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나.
"야속하다기보다 돌이켜보면 팬들이 많은 별명을 지어주시면서 재미있어 하시더라. 안좋은 별명도 있었지만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별명을 접하고 보면서 웃은 적도 있다. 야속하다기보다 팬들의 사랑이고 관심이라 생각한다. 이제 별명을 들을 수 없다."
-기억에 남는 별명이 있나.
"너무 많다. 어린 시절에는 김질주가 나와 이미지가 다른 별명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덩치도 크고 느릿한 이미지가 있어서 김질주라는 별명이 마음에 들었다. 팀의 중심이 되면서 한화의 자존심이라는 별명이 마음에 들었다."
-은퇴를 결심한 계기는.
"1년 계약을 하면서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납득하지 못하는 성적이 나온다면 결단을 내리고 싶었다. 한화라는 팀에 나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고 싶었다. 20살 젊을 때보다 웨이트트레이닝 등 운동량을 많이 가져갔다. 당시에는 이런 결정을 했을 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어느 해보다 열심히 준비헀다. 하지만 시즌 개막하고 얼마되지 않아 2군으로 내려갔을 때 마음 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1군에 다시 온 이후에 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열심히 헀다. 8월에 2군에 가면서 마음을 굳히게 됐다. 서산에서 젊고 유망한 선수들을 보면서 결심하게 됐다."
-은퇴 결심한 이후에도 서산에서 훈련을 했는데.
"2군 서산구장에서 젊은 선수들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얼마나 힘들게 준비해서 1군 무대에 서는지 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 선수들이 워낙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상태에서 선수들에게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평상시와 다르지 않게 행동했다. 이것저것 후배들이 궁금해하는 점에 대해 말해주려고 했다. 내가 결정을 해야하니 복잡하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
-타석에 들어설 때 어떤 생각을 하고 들어섰나.
"어린 시절부터 아웃되는 것을 싫어했다. 아웃되는 것도 싫었고, 삼진 당하는 것도 싫었다. 아웃이 되도 배트에 공이 안맞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항상 타율도 좋고, 정확성도 좋고, 홈런도 잘 치고, 안타도 잘 치고, 투수들이 상대하기 꺼려하는 타자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준비했다. 프로에 와서도 거기에 포커스를 맞춰서 준비했다. 홈런이 많지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타자의 기준에 맞춰서 해왔다."
-포스트 김태균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마음 속으로 있지만 후배들이 다 잘했으면 좋겠다. 다 포스트 김태균이 돼서 한화가 최강팀이 됐으면 좋겠다. 굳이 한 명을 지목하지는 않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록은.
"기록을 의식하면서 뛰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크게 없다. 그래도 300홈런, 2000안타, 1000타점 기록을 만들었다는 것은 뿌듯하다. 주목받은 연속 출루 기록도 기억에 남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안타는.
"안타는 아니고 홈런이다. 데뷔 첫 안타였던 홈런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아버님이 TV로 보시다가 우셨다."
-주위의 큰 기대를 안고 뛰었는데.
"주위에는 제가 그냥 야구 잘하는 것처럼 비춰지실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누구에게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력을 많이 했다. 겉모습과 다르게 성격도 예민하다. 다음날 경기도 남들보다 더 많이 준비했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성격이다. 20년 선수 생활에서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고 노력했다. 주위의 큰 기대에는 보답하지 못한 것 같다."
-마지막 경기가 8월15일 삼성전이 됐는데.
"모든 선수는 처음도 중요하지만 마지막도 중요하다. 팀도 좋은 성적에 본인도 좋은 성적을 가지고 마무리를 하는 상황을 꿈꾼다. 이승엽 선배나 박용택 선배 같은 좋은 마무리를 꿈꾸고 기대했다. 하지만 상황이 있는 것이다. 선배들은 워낙 뛰어난 분들이라 가능한 것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을 했다. 팀 상황에도 내가 빨리 결정해주는 것이 모든 일에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은퇴 후 계획은. 단장 보좌 어드바이저 역할은 어떨 것 같나.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야구를 하느라 못해본 것이 많다.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한화가 더 좋은 팀으로 갈 수 있도록 배우고 싶다. 좋은 선배들이 많으니 뭘 배우고 준비해야하는지 생각하면서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 구단이 팀을 이끌어가는데 조언하고 조율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누가 되지 않고 좋은 결과로 갈 수 있도록 준비를 잘 하겠다. 공부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하겠다."
-자신에게 한 마디 한다면.
"초등학교 2학년 아버님이 시켜서 야구를 했다. 그때는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어서 야구 안하고 집에 가는 등 방황했다. 그 때 감독님과 아버님이 잡아주셨다. 중학교 올라가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이 길로 가야겠구나 생각했다. 마음을 바꿔먹고 부모님 속을 썩이지 않았다. 이후 야구 생각을 많이 했고, 목표롤 갖고 했다.
거의 야구만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부모님이 외진 곳에 연습장을 지어주셔서 연습을 항상 했다. 아버지가 집에 온 후 스윙 1000번을 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자게 했다. 정말 야구만 했다. 이제 이글스 유니폼을 벗지만 기대되는 제2의 인생을 만들도록 하겠다."
-1982년생 선수들이 뛰고 있는데 은퇴하게 됐다. 하고 싶은 말은.
"나 때문에 친구들에게 불편하거나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 미안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친구들은 야구 잘 해서 내가 하지 못한 멋진 마무리를 했으면 좋겠다. 대표팀 등에서 서로 의지했고, 좋은 추억이 많다. 추억을 안고 떠날 것이다. 선수들이 더 열심히 잘해서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선수 인생에 점수를 준다면.
"30~40점 밖에 안되지 않나. 나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점수를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굳이 매기자면 팀의 주축 선수로서 우승할 수 있는 팀으로 만들지 못한 점 때문에 많은 점수를 줄 수 없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지도자가 있나.
"너무 많다. 이정훈 2군 감독님은 나를 동생처럼 아껴주셨다. 김인식 감독님과 함께 뛰면서 야구가 많이 늘었다. 개인 훈련의 중요성도 깨달았던 시기였다. 그러면서 한 단계 선수로서 올라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김성근 감독님은 안주하지 않고 한 꺼풀 벗도록 지도해주셨다."
-은퇴 기자회견을 시작하며 울었는데.
"마음을 결정할 때도 덤덤했다. 아무렇지 않았다. 열심히 했기 때문에 후회가 남는 것도 없었다. 감정이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에 와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현실로 다가오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런 큰 관심을 받을 일이 앞으로 없을 것이라서 북받쳤다."
-영구결번에 대한 생각은.
"구단 관계자가 결정하시는 것이다. 결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나보다 훌륭한 선수도 많고, 뛰어난 선수가 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것이다. 나를 돌아보면서 생각하고 구단과 상의해야할 것 같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어떤 식으로든 기억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저의 강점인 김별명이라는 게 있으니 기억에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전에는 크게 그런걸 못 느꼈는데, 지금은 팬들에게 잊혀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팀이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데.
"결정권이 있는 보직은 아니다. 사장님, 단장님, 구단 관게자들이 좋은 결정을 하고, 발전을 위해 노력하실 것이다. 나는 이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니 선수들의 생각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구단에서 뭔가 추진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 제대로 하기 위해 준비와 공부를 해야한다. 열심히 준비하겠다.
-마지막 한 타석을 보고싶어하는 팬들이 있는데.
"은퇴경기를 안 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한 타석이 저한테 소중하지만 다른 선수에게는 더 간절할 수 있다. 가는 길에 선수의 소중한 기회를 뺏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많은 고민을 해서 결정했다. 번복하고 싶지는 않다."
황수진 scu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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