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역사학자 "경주가 당시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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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신문 작성일14-12-28 19:30본문
신라의 왕경이었던 경주가 당시 세계의 동서를 가르는 중심축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실 여부는 고고학 분야의 몫이지만 이런 경이적인 주장이 나왔다는 자체가 경주로서는 엄청난 수확이다. 언뜻 어설픈 주장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세계적인 역사학자의 견해인 만큼 우리나라 역사학계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지난 24일 경주에서 열린 제92회 화백포럼에서 해양실크로드의 세계적 권위자인 이란 테헤란대학교 역사학과 모함마드 보수기 교수는 "2천여 년 전 제작된 고대 페르시아의 지도에 경주를 자오선의 시작으로 명시하고 있다"며 "이 문서는 신라가 이미 국제적인 왕국이었으며 세상과 폭넓게 교류했다는 점을 확실하게 증명해 준다"고 주장했다.
보수기 교수는 이날 강의에서 한 장의 고지도를 최초로 공개하면서 "당초 지리학을 지배하고 있던 그리스의 지도에는 칼레닷 섬(현재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을 자오선의 기준으로 삼았지만 이후 페르시아의 자오선은 당시의 신라, 즉 현재의 경주를 자오선의 0도 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며 "이후 이슬람의 지리학 문서에는 이에 따라 신라의 강데즈(지금의 경주)를 자오선의 기준점으로 설정했다"고 덧붙였다고 강조했다.
보수기 교수는 경주에 심취한 역사학자다. 그는 경주 왕릉 주변에 산재한 서역인을 닮은 무인상을 연구하여 당시 실크로드의 출발점이 경주라는 사실을 주장한 외국인이다. 그는 특히 '강데즈'라는 지명에 대해 의문을 가졌지만 경주가 과거 '금성'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강데즈'가 경주임을 밝혔다고 주장했다. 페르시아어로 '강'은 '금'을 뜻하고 '데즈'는 '성'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마침내 이를 증명할 수도 있는 고대 페르시아 고지도를 들고 나와 주위를 놀라게 했다. 고지도를 보면 동쪽 끝이 '강데즈'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경주라는 것이다. 즉 많은 페르시아 문헌에 신라를 "금이 많은 도시, 물이 맑고 젊은이가 많은 도시, 사시사철 꽃이 만발하고 살기 좋은 도시여서 한 번 방문하면 돌아가고 싶지 않은 도시로 묘사돼 있다"며 "신라는 페르시아에서 유토피아로 여겨진 최고의 왕국이었다"고 밝혔다.
사실 여부를 떠나 외국인의 신라 연구 열정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다만 이런 사실(史實)들이 외국인에 의해서 하나씩 밝혀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제 신라왕궁 발굴 작업 대장정이 첫 삽을 떴다. 유물 발굴도 중요하지만 당시의 신라와 경주의 명성을 증명해줄 세계적인 역사자료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경주를 세계 도시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경북신문 kua348@naver.com
지난 24일 경주에서 열린 제92회 화백포럼에서 해양실크로드의 세계적 권위자인 이란 테헤란대학교 역사학과 모함마드 보수기 교수는 "2천여 년 전 제작된 고대 페르시아의 지도에 경주를 자오선의 시작으로 명시하고 있다"며 "이 문서는 신라가 이미 국제적인 왕국이었으며 세상과 폭넓게 교류했다는 점을 확실하게 증명해 준다"고 주장했다.
보수기 교수는 이날 강의에서 한 장의 고지도를 최초로 공개하면서 "당초 지리학을 지배하고 있던 그리스의 지도에는 칼레닷 섬(현재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을 자오선의 기준으로 삼았지만 이후 페르시아의 자오선은 당시의 신라, 즉 현재의 경주를 자오선의 0도 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며 "이후 이슬람의 지리학 문서에는 이에 따라 신라의 강데즈(지금의 경주)를 자오선의 기준점으로 설정했다"고 덧붙였다고 강조했다.
보수기 교수는 경주에 심취한 역사학자다. 그는 경주 왕릉 주변에 산재한 서역인을 닮은 무인상을 연구하여 당시 실크로드의 출발점이 경주라는 사실을 주장한 외국인이다. 그는 특히 '강데즈'라는 지명에 대해 의문을 가졌지만 경주가 과거 '금성'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강데즈'가 경주임을 밝혔다고 주장했다. 페르시아어로 '강'은 '금'을 뜻하고 '데즈'는 '성'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마침내 이를 증명할 수도 있는 고대 페르시아 고지도를 들고 나와 주위를 놀라게 했다. 고지도를 보면 동쪽 끝이 '강데즈'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경주라는 것이다. 즉 많은 페르시아 문헌에 신라를 "금이 많은 도시, 물이 맑고 젊은이가 많은 도시, 사시사철 꽃이 만발하고 살기 좋은 도시여서 한 번 방문하면 돌아가고 싶지 않은 도시로 묘사돼 있다"며 "신라는 페르시아에서 유토피아로 여겨진 최고의 왕국이었다"고 밝혔다.
사실 여부를 떠나 외국인의 신라 연구 열정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다만 이런 사실(史實)들이 외국인에 의해서 하나씩 밝혀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제 신라왕궁 발굴 작업 대장정이 첫 삽을 떴다. 유물 발굴도 중요하지만 당시의 신라와 경주의 명성을 증명해줄 세계적인 역사자료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경주를 세계 도시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경북신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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