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민들이 김무성 대표에 관심이 높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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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신문 작성일14-07-16 20:19본문
새누리당 대표에 선출된 김무성 의원에 대한 포항시민들의 관심이 높다. 이는 김대표가 포항과 가지는 인연과 무관하지 않다. 김대표는 비록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을 포항에서 보냈다. 또한 정치에 첫발을 디딜 때도 부산이 아닌 포항에서의 일이다.
김 대표가 부산에서 4번의 금배지를 단 것만을 생각해, 그의 지역기반이 부산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김 대표의 정치시작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인 1978년 10대 총선을 앞둔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신민당 포항 영일 지구당 개편대회에 경선출마를 선언해 당시 이철승계의 조규창후보와 경합을 벌였고 김영삼계의 지지를 업고 당선이 유력했으나 당시 김영삼을 견제하려는 집권세력의 압력으로 중도포기를 하면서 끝이 났다.
김대표를 아는 사람들은 우선 김대표의 부친을 떠올린다. 부친 김용주옹은 포항에서 꽤 규모있는 수산물관련 무역회사를 운영했다. 이를 기반으로 김대표의 형은 동해철강을 설립했고 김대표는 20대 후반 정치에 관심을 두기 전까지 이 회사에서 8년여간 전무로 일했다.
포항에 머무는 동안 김대표는 포항JC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운동을 좋아해 야구부를 만들어 회원들과 함께 운동을 즐겼다. 청년시절인 만큼 일화도 많다. 활발한 활동을 시기한 당시 지역의 조직폭력배들이 김대표에게 린치를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김대표는 평소 인간 됨됨이를 좋게 본 또 다른 폭력배에 의해 목숨을 구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청년시절 활발한 활동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김대표를 통이 큰사람, 생각이 넓은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 대표는 포항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많다. 1년에 꼭 1,2번씩 다녀가고 있으며, 말년에는 포항에서 살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지난 대선 직후에도 곧 바로 포항을 찾은 것만 봐도 포항이 김 대표에게는 정신적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포항 사람치고 죽도시장과 한두가지 인연이 없는 사람이 없듯이 김대표도 포항을 찾을 때면 으레 지인들과 죽도시장 난전의 회를 떠서 함께 식사를 하곤 한다.
김대표의 부친은 포항 영흥초등학교의 설립자로 잘 알려져 있다. 교정에는 지금도 그 공적비가 서 있고 인근 주민들은 그 비석을 볼때 마다 부친인 김용주옹을 떠 올리곤 한다. 부친의 발자취가 있고 김대표 자신에게는 추억이 있는 이런 포항에 관심이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김대표와 포항의 인연이다.
김대표는 새누리당으로 봐서나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시기에 집권당의 대표로 선출됐다.
정치인에게 지역구는 어머니 품과 같은 곳이다. 비록 현재의 지역구는 아니지만 포항과의 인연이 남다른 만큼, 김대표를 향한 포항시민들의 성원은 남달라야 한다. 김대표가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는 포항 시민들이 김대표를 품어줘야 한다.
경북신문 kua348@naver.com
김 대표가 부산에서 4번의 금배지를 단 것만을 생각해, 그의 지역기반이 부산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김 대표의 정치시작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인 1978년 10대 총선을 앞둔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신민당 포항 영일 지구당 개편대회에 경선출마를 선언해 당시 이철승계의 조규창후보와 경합을 벌였고 김영삼계의 지지를 업고 당선이 유력했으나 당시 김영삼을 견제하려는 집권세력의 압력으로 중도포기를 하면서 끝이 났다.
김대표를 아는 사람들은 우선 김대표의 부친을 떠올린다. 부친 김용주옹은 포항에서 꽤 규모있는 수산물관련 무역회사를 운영했다. 이를 기반으로 김대표의 형은 동해철강을 설립했고 김대표는 20대 후반 정치에 관심을 두기 전까지 이 회사에서 8년여간 전무로 일했다.
포항에 머무는 동안 김대표는 포항JC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운동을 좋아해 야구부를 만들어 회원들과 함께 운동을 즐겼다. 청년시절인 만큼 일화도 많다. 활발한 활동을 시기한 당시 지역의 조직폭력배들이 김대표에게 린치를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김대표는 평소 인간 됨됨이를 좋게 본 또 다른 폭력배에 의해 목숨을 구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청년시절 활발한 활동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김대표를 통이 큰사람, 생각이 넓은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 대표는 포항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많다. 1년에 꼭 1,2번씩 다녀가고 있으며, 말년에는 포항에서 살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지난 대선 직후에도 곧 바로 포항을 찾은 것만 봐도 포항이 김 대표에게는 정신적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포항 사람치고 죽도시장과 한두가지 인연이 없는 사람이 없듯이 김대표도 포항을 찾을 때면 으레 지인들과 죽도시장 난전의 회를 떠서 함께 식사를 하곤 한다.
김대표의 부친은 포항 영흥초등학교의 설립자로 잘 알려져 있다. 교정에는 지금도 그 공적비가 서 있고 인근 주민들은 그 비석을 볼때 마다 부친인 김용주옹을 떠 올리곤 한다. 부친의 발자취가 있고 김대표 자신에게는 추억이 있는 이런 포항에 관심이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김대표와 포항의 인연이다.
김대표는 새누리당으로 봐서나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시기에 집권당의 대표로 선출됐다.
정치인에게 지역구는 어머니 품과 같은 곳이다. 비록 현재의 지역구는 아니지만 포항과의 인연이 남다른 만큼, 김대표를 향한 포항시민들의 성원은 남달라야 한다. 김대표가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는 포항 시민들이 김대표를 품어줘야 한다.
경북신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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